오퍼를 수락하고 한달이 조금 지나, 새 회사와 약속한 첫출근 날이 되었다. 몇 번 해봤다고 N년 전, 첫 회사에서의 첫출근 보다 덜 떨렸다. 아홉시에 건물로 들어가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고 몇분 기다리자, 1차 면접에서 만났던 기술매니저가 마중나왔다. 함께 사무실을 둘러보고 팀원들과 인사한 뒤 IT 부서에 가서 노트북 가방을 수령했다. 전회사에서는 노트북이랑 충전기만 달랑 줘서 생노트북을 에코백에 넣어서 옆구리에 끼고 집에왔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아예 백팩을 매고 출근했는데, 회사 굿즈와 노트북이 담긴 전용 백팩을 받았다. 회사 로고가 박힌 이런저런 귀여운 물건들이 가방에 채워져 있었는데 갑자기 애사심의 싹이 틔워지려 했다. 구경은 집에가서 마저 하기로 하고 환경설정을 하기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첫 화면으로 회사의 보안프로그램이 나를 반겼다. 지문 + 휴대폰 얼굴인식을 해야만 잠금을 풀어주는 막강한 친구였다. 팀 문서에 적혀있는 툴들을 설치/사용하기 위해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중고 맥북에 그어떤 보안프로그램도 깔려있지 않던 전회사에 비하면 할일이 꽤 많아보였다. 몇몇 툴들의 관리자에게 요청을 보내놓고 이미 들어가져있는 슬랙채널들의 대화를 좀 읽어볼랬는데 너무많고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도 빨라서 전혀 읽히지 않았다. 작은회사에서 큰회사로 옮겨서 그런지 이런 사소한 것들에 뇌가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매니저와 온보딩 미팅을 하고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다함께 근처 푸트코너로 몇분 걸어가 각자 먹고싶은걸 고르고 다시 만나서 사무실로 돌아와서 카페테리아에 모여앉았다. 정신없던 첫회사에서의 첫 점심은 얼떨결에 산 왕만한 부리또였는데, 함께앉은 동료들이 하는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아 그저 손에 잡힌 부리또만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첫출근도 몇번 해보면 짬이 쌓인다. 이번엔 필라플 샐러드를 사와서 적당히 대화 나누면서 먹다가 반쯤 남겨 냉장고에 넣었다. 음식섭취와 소셜에 반반씩 에너지를 할애해야하는걸 이제야 파악하다니.
그 뒤로 딱히 일은 안하고 문서들만 읽었다. 둘째주 까지는 적응하는 기간이니 부담갖지말고 둘러보라면서 아주 작은 버그픽스 티켓만 줬다. 전회사는 둘째날부터 업무에 착수했는데 아무래도 규모가 작으니 업무파악 시간도 짧아서였겠지. 대강 둘러본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커서 이걸 과연 다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뇌는 조져줄수록 성장하는거 아니겠습니까 뭐 계속 하다보면 언젠간 읽히겠지. 회사가 가진 막강한 자본을 보여주는 것들을 마주할 때에는 왠지 내가 신분상승 한 느낌이 들었고, 반면 압도적으로 큰 프로젝트의 규모는 여기서 내가 지고 가야 할 책임의 무게를 상기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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