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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워킹홀리데이 2017 - 2018

[영국워킹홀리데이] 플랏 쉐어링 시작

에어비앤비는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계산할 때 깔끔하고 돈떼일 걱정을 안해도 되서 좋다. 하지만 비싸다. 런던 물가를 몰랐던 나는 코딱지만한 방을 한 달에 £800 씩 주고 살았다. 그 돈이면 좋은 더블룸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리고 이제는 주소지를 그만 바꾸고싶기도 해서 플랏 쉐어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되도록 남쪽에 머무르고 싶어서 윔블던 주변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국사랑 이라는 홈페이지를 며칠 기웃거리다 두 개의 방이 맘에들어 각각 뷰잉을 하러 갔다. 한 곳은 윔블던 역에서 조금 떨어진 한식당 뒤의 숙소였는데 한국청년들이 쉐어하는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가 '오빠들이 잘 챙겨줄 것'이라고 해서 마이너스였고 부엌이 집 가장 구석에 있어서 그것도 좀 맘에들지 않았다. 방은 그냥저냥 평범한 한국의 원룸 같았는데 금액은 £600 언저리였다. 실망감이 좀 들었지만 남은방에 기대를 걸기로 하고 뷰잉을 마쳤다. 두 번째 집은 레인즈팍 역에서 아주 가까운 집이었는데 카운실 하우스였다. 이 때는 카운실 하우스가 뭔지 몰라서 내눈엔 이게 한국식 다세대 빌라처럼 보였다. 2층에 위치한 집 이었던 것 같은데 들어가보니 거실이 없고 작은 주방과 방 세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주인아줌마 같았던 분이 맘에들면 방세를 내라고 했는데 계약서도 없이 대뜸 내기가 상당히 찜찜했다. 영수증이라도 써달라고 하자 알았다며 수첩에 쓱쓱 적어 주셨는데 이 때 까지 엄청나게 꺼름직했다. 하지만 방 크기와 택스없이 £550 이라는 금액이 마음에들어 반신반의 하며 계약을 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또다시 우버를 타고 열심히 짐을 옮겼다. 귀여운 판다를 앞으로 못본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새로 이사가는 집은 부엌이 그동안 거쳐온 집들 보다 나았고 무엇보다 한국인들과 쉐어하는 집이기에 김치를 눈치 안보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주인이 아니라는데 주인같은 아주머니랑 다른 한 명의 한국인, 그리고 나 까지 해서 세 명이 쉐어하는 하우스였고 서로 활동시간이 달라 크게 부딪히지 않았다. 내 방에는 커다란 전신거울과 옷장, 싱글사이즈 장농, 책상(가장 맘에드는 부분)이 있었다. 그 전 집에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을 못하고 외출을 하는게 상당히 불편했던지라 새 방에 있는 가구들의 퀄리티는 뒷전이고 그냥 좋았다. 핑크색 침대 프레임은 그냥 안고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했지만 취업 걱정에 마음은 천근 만근이었다. 이 때가 런던에 간지 석 달 째였다. 지금이라면 해외에서의 취업과정과 나의 상태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취업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함을 인정했을테지만 그 때는 한국에서 쉽게 쉽게 하던 취업이 영국에서 기약없이 늘어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감의 시초였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영국에 사람들은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석양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울했다.  

 

자주 울었고 시간과 돈이 있었지만 불안해서 런던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었다. 매일 예산을 다시 계산해보고 잡히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했다. 무서운 리크루터들과의 통화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 나갔다. 그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에게 전화 해 전화를 붙잡고 꺽꺽대는 나를 발견하고는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크루터들과의 통화로 영어가 안들린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여서 일할 때 만큼은 스트레스 안받으려고 한식당에 지원했다. 당일 바로 면접을 보러오라고 했다. 무례하게도 맨손으로 갔다. 이력서를 가져왔냐고 묻는 사장님께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선 아차 싶었다. 여기도 일터인데... 그래도 주신 식혜를 한컵 마시면서 한국에서 해봤던 서비스직 경험을 있는 힘껏 어필하고 그자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기쁘고 씁쓸했다. 이나이에 다시 식당알바를 해야한다니. 

 

먹는건 많이 나아졌다. 한식당에서 알바를 할 때는 종종 먹고싶은걸 포장해주실 때도 있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도 면접제의는 찔끔찔끔 들어왔다. 풀타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는시간에 인터뷰를 보러 다녔다. 적게 일하는 날에는 하루에 서너시간 정도씩만 했지만 취업과 병행하기에는 아무래도 체력이 많이 달렸다. 그래도 너무나 절실했기에 해야만 했다. 한달 반 정도 일 하다가 취업이 되어 넉 달 정도 그 집에서 더 살고 권태감이 몰려와서 이사를 했다. 회사 집 회사 집이 일상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친목이 없었고 친구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삶이 우울해 져 변화를 주고자 런던의 중심과 가까운 곳에 다음 집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