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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워킹홀리데이 2017 - 2018

[영국워킹홀리데이] 다시 남쪽으로

핸든에서 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별로 한 건 없지만 주로 긴장하고 돌아다니는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테스코에 들락거리면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으려 애썼고 은행 계좌를 열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만들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지긋지긋한 그 집을 떠나 다시 남쪽으로 돌아왔다.

 

다시 남쪽으로 돌아갈 때에는 윔블던 부근은 예산과 맞는 숙소가 없었고 옆동네인 모던에 방을 구했는데 싱글침대와 옷장, 그리고 붙박이장 이외엔 딱 서있을 공간만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싱글룸 이었다. 하지만 주인할아버지가 상주하고 계셨고 오직 에어비엔비를 위한 집이어서 훨씬 마음이 놓였다. 판다 라는 작은 개도 있어서 더 좋았다. 

 

 

쟈근 판다쓰..

 

머물렀던 숙소 중 가장 작았던 방이다.

 

핸든에서 다시 돌아오던 날에는 혼자 우버를 타고 갔다. 주인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셨고 그 코딱지만한 방에 짐을 내려놓고 너무 배가고파 장을 보러 나갔다. 걷다보니 첫 숙소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슈퍼에서 대충 음식을 사고 옆에있는 갤럭시 라는 동네 식당에 들어가 가장 비싸보이는(그래봐야 £6 였지만) 버거세트를 사서 집에 와서 먹었다. 배가 너무 고프기도 했고 맛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어서 그간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게 먹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방문 했는데 처음 맛 본 동네식당의 매력에 크게 감동했던 것 같다. 

핸든에서 이미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만들고 각종 구직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던에 살기 시작했을 때에는 하루에 몇 통씩 리크루터에게 전화를 받고 이력서를 넣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영국의 구직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내가 지원한 서류를 확인하고 전화한 회사인지 아니면 구직사이트에서 내 프로필을 보고 전화를 건 리크루터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안들리는 영국 악센트를 억지로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다 겁에질려 의기소침해 지기 일쑤였다. 영국의 구직은 시간을 오래두고 봐야한다는 친구들의 조언에 애써 마음 다잡았지만 이러다 취직은 못하고 모아놓은 돈만 다 까먹고 돌아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좌절하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 생전 배워본 적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유튜브에서 찾아 배웠다. 책상이 없는 방이어서 서랍형 옷장에 노트북을 두고 하루종일 서서 강의를 듣고 여전히 맛없는 식사를 하고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내다 에어비엔비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져 근처에 플랏 쉐어링을 구하게 되었다. 

 

짠내나는 학습환경. 그래도 판다가 있어서 좋게 기억된다. 

 

마지막 에어비엔비 하우스에는 정말 시도때도 없이 새로운 손님들이 들락날락 거렸다. 나이대들이 대부분 나보다 많았고 크게 말을 섞지 않았다. 주인할아버지가 한 번은 어디 멀리 다녀오신다면서 나보고 You are in charge 라고 했는데 무슨소린지 못알아들어서 몇번 되물어 봤더니 내가 없을땐 니가 대장이라고 다시 말해주시길래 알아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랑 크게 부딪힌 적은 없지만 주인과 같은집에 사는 것은 어딜 가나 불편하게 마련이라 그런지 그 며칠은 아주 맘편히 지냈다. 그리고 강아지가 귀여웠던 것 이외엔 사실 별 기억이 없을 정도로 할 게 없는 집이었다. 그래도 있는동안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할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