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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워킹홀리데이 2017 - 2018

[영국워킹홀리데이] 프론트앤드 개발자로 취업하기

영국에서의 첫 취업과정은 험난했다. 빨리빨리에 최적화 되어있는 한국의 구직 시스템에 익숙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넉넉히 두 달이라는 취업기간을 주었고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실제 취업까지는 다섯 달이 걸렸다. 내 경우에 첫 구직이 다섯달이나 걸린 데에는 명확한 이유들이 있다. 해외취업 경험 무, 해외근무 경력 무, 단기취업비자 소지 등... 그러나 해외에서의 취업경험이 있다면 한국만큼 빠르진 않더라도 한 달이면 충분할 것이다. 
 
영국에 넘어 와 몸을 푼 지 한달 반이 지난 뒤 해외경험 없이 워킹홀리데이로 기술직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의 경험담을 듣고 나도 해내고 말겠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영국인도 구직이 어렵다는 11월에 ㅋㅋㅋ. 
 
한국에 있을 때에 내 직업은 '웹 퍼블리셔' 라고 불렸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서 넘겨주면 개발자가 개발을 하기 전에 HTML과 CSS를 이용 해 웹 어플리케이션의 뼈대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는데 디자이너와 개발자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도맏아 했다. 영국에서도 최대한 비슷한 일을 하는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탐색했는데 퍼블리셔라는 이름의 포지션은 없었고 '무슨무슨' + developer 라고 불리었다. 그마저도 아주 극소수였고 코딩을 할 줄 아는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앞단 개발자인 front-end developer 가 대부분이었다. 디자이너로 지원을 하려면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해서 하기싫었고 front-end developer 로 지원 하기에는 필요로 하는 스킬들이 부족했다. 그래서 지원과 동시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했다. 
 
영국에서 구직을 할 때에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이 있다. 바로 Cover Letter와 CV이다. 어디에 왜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구글링을 해서 수집 및 분석을 거쳐 내 Cover Letter와 CV를 만들었다. Cover Letter는 지원을 할 때 쓰는 고용인에게 쓰는 편지 같은 것인데 아예 Cover letter 란이 따로 있거나 혹은 메일로 서류를 보낼 때 내용에 쓰기도 한다. 내용은 주로 간단하게 내가 누구고 어느 포지션에 지원하며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예의를 갖춰 쓰는 느낌이 강하다. 편지 예의를 중요시 하는 영국다운 문화다. CV는 이걸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쓴 이력서 형식의 서류이다. 근무경력, 학업경력, 가지고있는 능력 등을 증거가 될 수 있는 (예를들면 근무일, 졸업일, 자격증) 내용들과 함께 담아내면 된다. 서류는 도와줄 사람이 있을때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한국에 있을 때 친한 외국인 친구들에게 첨삭을 부탁했다. 
 
한국에서 들고 온 Cover Letter와 CV를 장전하고 구직계의 Facebook 이라는 Linkedin에 가입을 했다. Linkedin에서 내 스펙과 비슷한 공고들을 수집하고 Cover Letter와 CV를 투척했다. 어떤 공고들은 막상 클릭 해 보면 다른 구직사이트로 연결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개의 구직사이트에 가입하게 되었다. 나중에 얘들이 내가 검색했던 포지션과 비슷한 공고를 추려서 매일매일 메일로 보내주는데 가뜩이나 예민한 취준생 마음을 아침저녁으로 뒤흔든다. 
 
전략: 무조건 많이넣어서 될때까지 한다. 조건과 빗나가도 무조건 넣고 봄.
 
뭣도 모르고 HTML과 CSS가 필수라는 포지션에는 모조리 지원을 하면서 그 외에 내가 갖추지 못한 프로래밍 언어들을 유튜브 비디오를 찾아 주먹구구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훌륭한 개발자가 되었다면 바람직한 결말이겠지만 영어듣기가 안되는 상태에서 튜토리얼을 이해할리가 만무했고 한글 튜토리얼은 더 못알아듣겠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지원하는 족족 부리나케 전화가 왔는데 그 외에도 Linkedin 에서 검색한 디벨로퍼 목록에 뜬 내 프로필을 보고 오는 연락도 적지않았다. 문제는 이걸 구분하지 못 할 정도로 현지 영어를 못알아 들었다는 거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 리크루터인지 회사 채용 담당자인지 아니면 시니어 개발자인지 알 길이 없었고 모든 전화가 회사에서 오는 전화인 줄 알고 최선을 다해 '알아듣는 척' 했다. 전화를 끊고나면 영혼이 빠져나간 듯 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서류지원 + 억지공부 + 전화받기 를 한달 반 정도 하다보니 얘들이 대충 뭘 물어보는지는 알겠는데 나를 찾는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슬슬 들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Front End Developer 에 맞는 스펙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80% 이상이 채용조건에 JavaScript를 기반으로 한 Angular와 React를 필수 스킬로 걸어놓았는데 JQuery 로 간단한 토글 정도만 쓸 줄 알았던 나는 이러다 진짜 망하는건가 싶었다. 하나 걸릴 때 까지 해야한다는 친구들의 응원에 되고말고 정말 다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 면접이 잡혔다. 온라인 간행물을 발행하는 회사였는데 여기는 E-mail 개발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눈치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떨면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아주 긍정적으로 반응을 해주던 면접관의 표정을 보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내 다음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나는 탈락했다고 통보를 받았다. 첫 면접을 시작으로 취업을 하기까지 열 개 정도의 면접을 본 것 같다. 뭔지도 모르고 넣은 포지션이 Imperial College의 개발자였고 어떤 곳은 오전 아홉시 부터 오후 네 시 까지 경쟁자와 나란히 앉아 코딩 테스트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진이 다 빠져 심신이 너덜너덜 해질 쯤 Linkedin에서 나를 찾은 어떤 리크루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비자를 물어보더니 단기비자라 지원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고 끊었다가 다시 전화가 와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 전화를 한식당에 일하러 가던 중 기차역에서 받았는데 앞에 보았던 면접들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던 터라 크게 기대되지 않았다. 
 
면접 장소는 런던 한 복판에 있는 세인트폴 성당 근처의 건물이었다. 리크루터가 면접보러 가기 전에 자기를 만나고 가라고 해서 건물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리크루터를 꼭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응원해준 것 외엔 크게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리크루터의 응원을 받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사무실로 올라갔다. 1층에서 한 번 그리고 사무실이 있었던 층에서 한 번 더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키가 큰 남자애가 휘적휘적 걸어와서 정말 하나도 못알아듣겠는 코크니 악센트로 자기소개를 하고 정겹게 말을 걸어 주었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여자가 들어와서 셋이 면접을 진행했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아는건 안다고 솔직히 말했고 마지막에 받은 질문이 나중에 디자인을 하고싶니 개발이 하고싶니 였는데 나는 다 할줄 아는 만능리더가 되고싶다는 말인지 방군지 모를 대답을 했다. 곧 테스트 파일을 보내주겠다며 다시 만나자고 하고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지나도 테스트 파일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렇게 또 웃는얼굴로 거절을 하나보다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면 내가 고통스러워 지기 때문에 최대한 기대를 지워 버리면서 다른 회사들의 서류지원과 한식당 알바를 병행했다. 런던 밖의 몇몇 회사에서도 연락을 받았는데 교외는 사람 구하기가 적잖이 힘든가보다. 그때의 나는 굳이 런던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어디든 불러주면 갈 태세였다. 런던 밖 회사들은 주로 연봉이 런던에 비해 낮은데 괜찮겠냐, 너 정말 올 수 있냐 는 질문들을 했다. 콘월인지 브리스톨에 있는 회사에서 테스트 파일을 보내줘서 작업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세인트폴에 있는 회사를 연결시켜 줬던 리크루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발팀장이 테스트파일을 보내준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면서 바로 테스트 파일을 보내줬다. 기한도 없고 최대한 빨리 해야 점수를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해 2박 3일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자며 알바와 코딩을 병행했다. 자기들이 이미 쓰고있는 랜딩페이지를 하드코딩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아무 기능도 없는 페이지여서 무리없이 할 수 있었다. 다만 제한된 자료 내에서 독창성을 보여주면서 기존에 있는 브랜드 색을 담아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코딩파일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 리크루터에게 연락이 왔는데 회사에서 아주 만족했다고 다음 날 최종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최종 면접까지 가본 적이 없어서 구글에 검색을 해봤다. 최종 면접이란 마지막 한 명을 가려내는 면접으로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나만의 장점을 어필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다. 영국에서의 근무경험도 없고 영어도 겨우 알아듣는 내가 영국애들보다 뛰어난 점이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며 회사에 대한 나의 관심도를 표현하기 위한 질문들도 몇 가지 준비해 갔다. 
 
코딩을 리뷰하기 위해 대본도 짜고 옷도 말끔히 갖추어 입고 첫 면접을 봤던 건물로 찾아갔다. 개발팀장이 첫 면접날 봤던 사람이 아닌 다른 여성과 함께 나왔다. 총괄팀장이라고 한다. 카페까지 가는 짧은 길에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머리속으로는 외워간 스크립트를 되뇌임과 동시에 앞에서 두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 긍정적인 리액션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를 시킨 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나니 총괄팀장이 궁금한 점이 있냐고 물어봤다. 준비해간 질문을 쏟았다. 친절하고 성실하게 대답해주었고 질문이 동 날 무렵 이제는 내가 한 코딩을 설명해야겠다 싶었는데 내가 합격했다고 한다. 잘 믿기지가 않아 다시 한 번 물어봤고 오늘 이 자리는 너에게 굿뉴스를 전해주기 위한 자리라는 확답을 듣는 순간 5개월 간의 응어리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 뒤로는 앞에서 무슨말을 하건 자동반사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건물을 나와 집에가는 길에 면접보고 나면 연락을 달라던 리크루터에게서 전화가 쉴새없이 왔다. 기차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어떻게되었냐고 묻는 질문에 내 흥을 다 표출할 수가 없어서 내려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걸어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해 취직이 되었다고 하고 방방 뛰었더니 축하한다면서 정말 잘했다고 격려해 줬다. 그러더니 곧 첫출근 날짜와 연봉을 전해주었다. 뭔가 이상해서 너 내 출근일이랑 연봉 알고있었으면 합격한 것도 알고있었던거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사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얘가 어리숙한 나를 보며 얼마나 재밌어했을까 싶다. 
 
그 날도 오후에 한식당 알바가 잡혀있어서 집에가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출근했다. 출근길에 계약서들이 메일로 줄줄이 날아왔고 offer 를 수락하겠냐는 메세지에 지체 없이 바로 수락했다. 코딩 테스트를 받아놨던 회사에는 취직이 되어 테스트를 못하겠다고 연락을 해주고 일주일 뒤의 첫 출근에 대비해 뭘 해야할지 몰라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영어나 코딩이 일주일 내에 늘 수는 없고 딱히 긴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5개월에 걸친 첫 구직이 끝났다. 이 회사는 총 11개월을 다니고 합병과 함께 이루어진 정리해고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는데 첫 구직에서 너무 크게 데인 나머지 다시 일을 구하기가 막막했다. 하지만 두 번째 구직을 통해 첫 구직이 왜 5개월이나 걸렸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은 무려 2주만에 구했다. 이 때의 나에게는 11개월 이라는 영국회사 경험과 영어듣기가 트인 귀, 그리고 리크루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구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이러다 인턴도 못해보고 한국에 돌아가는 줄 알고 하루하루가 막막했지만 울면서 부딪힐거 다 부딪히고 나니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재산으로 얻게되었다. 

 

 

위의 내용을 담은 인터뷰:
https://spotifyanchor-web.app.link/e/Ry9r2dtF1Ib

 

7. Software Engineer 비지비 님 🧡 by Savage Sisters

자매님의 Tech career를 응원합니다 🧡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있는 이곳은 Savage Sistersssssssssss!  일곱번째 에피소드는 저 Busybee 의 인터뷰입니다 🥳 재밌게 들어주세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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