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제시카. 나처럼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예의바른 동양인 답게 우리 둘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다른 숙박객들에게 피해가 갈까 속닥속닥 대화를 나눴다. 그 집에 있는 다른 애들이 어눌한 영어로 늘어놓는 내 하소연을 듣는게 부끄러웠던 탓도 있다. 도착한 첫 날 제시카는 이미 면접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끌고 튜브로 숙소까지 왔다고 했다. 나보다 작은데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론 자기가 영어를 못해서 걱정된다고 하소연 했지만 제시카의 눈빛은 똑부러졌다.
그렇게 제시카의 영국생활 3일 차 나의 영국생활 14일차에 우리는 제시카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런던 시내의 면접장소로 모험을 떠났다. 제시카는 홍콩에서 유치원 선생님 이었는데 영국에서는 백화점에서 판매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덕에 해롯 백화점에 가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튜브를 타고 해롯까지 갔다. 긴장한 제시카를 잘 달래서 면접에 보내 놓고 나는 백화점을 빙글빙글 돌다가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 안되서 긴장감이 풀려 피곤한 얼굴을 한 제시카가 돌아왔다. 면접은 잘 되었고 첫출근날도 받아왔다. 중국관광객이 많은 영국의 백화점들은 중국인이 가능한 원어민 직원들을 위한 자리가 많다고 한다. 배가 안 고프다며 치킨너겟 몇조각을 깨작 거리던 제시카는 출근복을 사야한다고 했다. 시내에 나온 김에 우리는 M&S에 갔다. Marks & Spencer 라는 영국판 유니클로같은 곳 이었는데 홍콩엔 아직 영국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어 제시카는 런던이 홍콩과 비슷하다면서 M&S도 익히 알고있었다. 이리저리 나를 잘 데리고 다녔다. 예산이 맞지 않는지 Primark 에도 갔다. 여긴 패션용 다이소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못 입을 것 같은데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예쁜 옷들이 아주 저렴한 가격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만큼 매장은 사람으로 바글거렸고 옷가지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걸 따로 주워서 처리하는 직원들도 보였다. 나도 가격에 흔들려 몇개 입어봤지만 사진 않았다.
제시카의 첫 출근날 까지 시간이 남아 우리는 함께 NI넘버도 신청하고 몇 번의 외출을 더 했다. 캠든마켓과 노팅힐에도 갔다. 인사동 쌈지길에서 놀고 온 느낌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동네였다. 비싸고 상업적인 맛 그리고 돈만내면 따듯한 미소를 얻을 수 있는 곳.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신발은 노팅힐에서 사야한다는 제시카를 따라가서 평소 사고싶었던 닥터마틴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 온 것이다. 지금도 아주 잘 신고있다. 아쉽게도 에어비엔비 예약일이 곧 끝나서 제시카를 그 집에 두고 나는 북런던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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