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회사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6개월 정도이다. 그렇다. 영국에서 구한 세 번째 직장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 새 회사에서의 시작은 언제나 쫄림이 함께 하지만 이번 회사는 웹 개발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포지션이 바뀐데다 그마저도 경력직으로 들어가게 된거라 기술적 뒷받침에 대한 압박감으로 쫄림이 더했다. 반면, 영국에서 근무해본 짬이 있어서 영어나 사람을 대하는 등의 소프트스킬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매번 그렇듯 긴장감을 안고 시작 해 임포스터 신드롬이 기승하는 시기를 거치고, 어느덧 회사에 적응을 하고나니 여유가 생겨서 현회사 근무하면서 느낀점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근무환경 - 개발청정구역
현회사를 다니면서 내 적응세포가 두드러지게 반응하는 부분이 세 가지 정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근무환경이다. 근무시간, 휴가일 수, 근무강도 등의 1차원 적인 환경은 대부분의 회사가 기본값으로 지켜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나 현회사는 정말 극 초 초 초 초창기 스타트업이라 규율이 상당히 심플하고 일부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던진 질문을 계기로 회사의 룰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큰 회사에서 이미 만들어진 룰을 따르며 일하다가 회사 규칙의 일부를 내가 만들어가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일일 근무시간만 맞추면 타임존, 근무장소에 제약이 없다는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트업스러운 매력 중 하나이다. 금요일 이른오후에 노트북을 덮고 튀어나가 동네 펍에서 파인트를 한 잔 때릴 수도 있고, 장기로 한국에 다녀오는것도 가능해졌다. 그 이외의 것들, 예를들자면 회사와 팀의 분위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같은 것들도 이 회사에서 일할만 하겠다는 인상을 주는데 한 몫 했다. 전 회사들은 말로 돈 버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마케팅이 주류인 회사들이어서 서양인싸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는데, 현회사는 개발자가 주류여서 그런지 꽤 평온하다. 입사 초기에 이전 회사들의 친목 방식에 길들여져 있어서 현회사에서 친한 동료가 없는게 서운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사람들이 불친절한 것도 아니어서 딱히 뒷담화, 잡담 할 상대가 없다 뿐이지 일에 집중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Don't shit where you eat 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빡빡한 데드라인이 없는 것 또한 대부분의 영국 회사들이 기본값으로 안고가는 부분이지만 가산점을 주고싶은 부분은 여기에 안주해서 꿀빠는 게으른 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개발에 진심이어서 막히는 부분을 도와줄 때 행복해 하고 문제의 답을 찾을 때 희열을 느낀다. 고인물들이 업무를 이리 저리 회피하고 정치싸움이 난무하던 이전 회사들에 비하면 현회사는 그야말로 개발 청정구역이다.
리액트
예전에 리액트를 배우는데 6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는데 진하게 반성한다. 실제로 배워보니 생소했던 리액트 용어들과 디자인패턴이 어느정도 읽히는 때가 6개월에 접어들었을 즈음이었으니까. 아무리 좋은 예제를 보고 독학 해봐도 함께 쓰이는 라이브러리, 디자인 패턴, 데이터 구조가 실무코드랑은 달라서 적응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6개월이 지난 이제야 겨우 뭐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고 내가 뭘 모르는 상태인지 구글링이 가능해 져 사소한 질문으로 동료를 귀찮게 하는 일 없이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작은 솔로 프로젝트에 내 이름만 올라가있는걸 보고나니 회사에서도 이제 나혼자 이정도는 쳐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입사 후 약 4개월 정도는 실무용 리액트 + 타입스크립트에 치여 일이 끝나면 드러눕기 바빴다. 그날 배운걸 복습해볼 시간같은건 없었다. 매일 겹겹이 쌓이는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책을 몇 권 샀는데 그마저도 볼 힘이 없어 몇 개월 정도 방치했다. 그러다 최근 여유가 좀 생겨서 회사 프로젝트 방법론과 맞는 책을 읽어봤는데 지금까지 실무에서 사용한 리액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바닐라 자바스크립트에서 리액트로 넘어올 때, 왜 자꾸 새로운 프래임워크를 만들고 여기에 타입스크립트니 뭐니 하는 디펜던시를 덕지덕지 붙여 공부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지 짜증이 났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잘 배운 프레임웤 하나로 탄탄한 앱 하나가 돌아가는걸 확인하고 나니 약간 리액트 신봉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해하고 나니 재밌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리액트다. 6개월 전 코웃음 친 나 각잡고 반성해.
백앤드
백앤드와 협업다운 협업을 처음 해보는거라 전문용어부터 시작해서 많이 어리버리했다. endpoint, payload 등등의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히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고 간혹 백엔드에서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마저도 프론트에서 보내는 내 코드가 문제인 줄 알고 골머리를 싸맸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요즘은 합이 잘 맞아 큰 잡음 없이 데이터를 받고 보내기가 가능해 졌다. 가끔 깃헙에서 백앤드 코드를 볼 일이 있는데 모르는 언어라 뭐라는지 잘 모르겠으나 일련의 규칙이 있는 정도는 보인다. 백앤드 코드를 읽을 줄 알면 소프트웨어 개발에 눈이 완전히 떠질 것 같아 배우고싶은 욕심이 슬금슬금 일고있다. 실무코드로 새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짬이 나면 독학 해봐야지.
새 회사와 6개월간 합을 맞춰본 결과, 이 회사에서 쭉 일해도 될 것 같다는 꽤 괜찮은 인상을 받았다. 개발자에게 불필요한 고객응대나 소셜라이징 같은걸 시키지 않고 온전히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는데다 업무강도가 강하지 않는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게다가 모두가 개발에 진심이어서 그 사이에서 일하는 나도 행복한 고구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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