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부활절 연휴가 긴데 통상 부활절 주말 앞뒤로 하루씩 더 쉬어서 4일정도 된다. 가족끼리 보내는 연휴라 런던에 있어봐야 딱히 재밌을 것도 없어 오랜만에 복잡한 도시를 떠나 파트너의 고향동네에서 부활절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바리바리 짐을 챙겨 기차역에 도착하니 거의 한국의 구정마냥 터미널이 붐볐다. 우리가 탈 기차가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방송에 인파를 헤치고 우리 자리를 찾아 착석하고 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입석으로 가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런던과 멀어질수록 사람이 많이 빠져 나중엔 전부 착석이 가능했다.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니 기차역 주차장이 바글바글 한 가운데에 파트너의 아버지도 우리를 픽업하러 와계셨다. 런던을 벗어나니 일단 공기부터 달랐다. 런던에 아무리 공원이 많고 날씨가 맑다고 해도 내가 느끼기에는 도시 특유의 빡빡함이 있어 어딜 가도 런던만 벗어나면 정서적으로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연휴 첫날은 그동안 새 회사에 적응하느라 못잤던 잠을 늘어지게 자고 회사에서 미처 따라가지 못한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 공유 사무실에 갔다. 동네에 몇몇 공유 사무실이 있었는데 저렴한 곳들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어서 조금 비쌌지만 £25를 내고 새로지은 곳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날은 드물게 날씨가 하루종일 맑고 따듯했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쾌하고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커피와 간식을 사들고 오피스로 걸어갔다. 문앞에서 스탭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가 예약한 사무실이 거기가 아니라면서 그 부근에 새로지은 오피스로 찾아오라고 했다. 한 10분 더 걸었지만 날이좋아 노트북 무게같은건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사무실 건물에 도착해서 출입구를 못찾고 서성이자 스탭이 나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건물 안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시켜주었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부엌, 전화통화를 위한 프라이빗 부스, 휴게공간 등 모든 시설이 반짝반짝 했다. 아무 책상이나 골라잡으래서 통유리로 둘러쌓여 밖의 초록풍경이 내다보이는 창가자리를 선택했다. 넓다란 책상에 목이 고정되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모니터에 내 노트북을 연결하고 의자에 앉아보니 집에서 근무할 때와는 사뭇다른 편안함에 내 허리가 광명을 찾은 느낌이었다. 공부하면서 카페에서 사간 샌드위치를 먹고 휘적휘적 구경하고 다니다가 또 공부했다. 휴일이라 심리적으로 편안해서였을까 길가의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 탓이었을까 역대급으로 집중력이 좋아 계획했던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오후에 파트너의 본가에 가서 저녁으로 생선을 먹었다. 원래 이스터 전날에는 생선을 먹는거라고 한다. 어릴때 교회에 갔지만 부활절에는 삶은계란에 그림그리기 이벤트 정도가 다였어서 그 날의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는데 전날, 당일날 먹는 음식들이 다른 것 같았다. 당일날 우리는 로스트를 먹기로 했는데 어떤 고기로 로스트를 하는지도 부활절인지 성탄절인지 그리고 나라마다 다르다고 했다. 내가 양고기 로스트를 한 번도 안먹어봤다고 해서 우리의 부활절 로스트는 자연스럽게 양고기로 결정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차분하고 공기좋은 동네에서 이스터 당일까지 3일을 내리 쉬어서 이미 몸과 마음은 충분히 충전이 되었다. 휴일 마지막 날은 영국의 변덕스러운 기차 스케쥴에 뒷통수 맞지않기 위해 일찌감치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한국에선 왠만하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기차가 시도때도없이 캔슬된다. 미리 좌석을 지정해 (저렴하지도 않은) 표를 구매한 입장에서는 기차가 취소되면 다음기차에서는 내 자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행도 아닌 환승하는 경로로 생고생을 하면서 가야하는 경우가 꽤나 억울하다. 다행히 그날 우리가 타고온 기차에는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어서 정시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심히 쉬었으니 다시 열심히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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