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살다보면 한국채소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깻잎과 송이버섯이 그렇다. 굳이 필요하면 구할 수는 있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아시안 슈퍼에 가야하고 어디서 넘어온건지 알 길이 없는 이 채소들은 몸값또한 매우 비싸다. 한국에 있었다면 퇴근길에 천원주고 깻잎 한 봉지 사서 요리해 먹고 남은 미처 사용하지 못한 채 냉장고 구석에서 시들어 갈 깻잎들이 영국에서는 너무나 귀하다. 그래서 영국살이 3년차에 깻잎을 직접 키우기로 했다. 깻잎과 들깨가 한 식물에서 자라는지도 몰랐던 일자무식으로 시작해 올해로 세 번째 깻잎을 키우고있다. 처음엔 살다살다 내가 깻잎을 다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깻잎 키우기는 꽤나 흔한 취미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 3년 노하우가 담긴 ㅋㅋ 깻잎 농사 수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씨앗 구하기
먼저 씨앗을 구해야 하는데 온라인 쇼핑으로는 꺳잎씨앗 구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들 Sesame leaves 라고 부르는 오역된 꺳잎의 학명은 Perilla leaves 이다. 이 이름으로 구글링을 해보면 일본의 시소 잎과 깻잎이 섞여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깻잎 키우고싶은 맘이 반은 떨어져 나간다. 한국에서 보내달라고 해도 사실 문제는 없으나 씨앗을 주고받으려면 서류가 있어야 한다는 등 인터넷에는 명확하지 않은 글들이 많아 여기서 또다시 사기가 꺾였다. 그리하여 찾게 된 곳이 영국 한인커뮤니티 인데 여기에 깻잎 씨앗을 구하는 글을 올려 내가 가지고있는 다른 씨앗들과 교환하거나 혹은 나눔받을 수도 있었다. 이후에 한국에서 친구가 나에게 보내주려고 예전에 사놓은 깻잎씨앗을 가져왔는데 오래되어서인지 발아가 되지 않았다. 어떤 씨앗들은 해가 지나면 발아가 아주 힘들어지고 또 어떤 씨앗들은 몇해가 지나도 잘 나오는 것들도 있어서 일단 초봄이 되면 씨앗을 최대한 확보해 두는게 상책이다.
발아 시키기
위에서 언급했지만 씨앗에 따라 발아가 어려울 수도, 아주 쉬울 수도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키친타올을 푹 적셔 깔아놓고 그 위에 씨앗을 후루룩 뿌린 뒤 뚜껑 대신 랩을 감싸고 이쑤시게나 포크로 구멍을 뽕뽕 뚫어준 채로 2~3일정도 두면 건강한 씨앗의 경우엔 싹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른 식물들에 비해 깻잎 씨앗이 좀 늦게나오는 편인 것 같은게 무우 같은 경우는 반나절만에 씨앗이 열리는 것에 비해 깻잎은 보통 이틀정도는 물을 머금어 몸집을 퉁퉁 불리는 데에 집중하고 셋째날에 이번에도 망했구나 싶을 때 씨앗 껍질이 툭 열려 생존을 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3일만에 나오는 씨앗들도 양반이다. 내 첫 깻잎 씨앗은 좀 묵은것들 이어서 밭에 뿌려두고 2주가 지나서야 나왔으니 깻잎 씨앗 발아는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 다만 3일에 한번씩 키친타올을 갈아줘야 썩지 않는다.
흙으로 옮기기
꼬물꼬물 나온 새싹이 뿌리까지 빠져나와 키친타올에 달라붙기 전에 흙에 옮겨줘야 한다. 붙어도 떼어내면 되지만... 좀 성가시다. 그래서 나는 뿌리가 나오기 직전에 흙에 옮기는데 흙도 잘 꺳잎용 흙이 있는 것 같지만 귀찮아서 그냥 아마존에서 multi 라고 적혀있는 것을 사다 썼다. 흙에 옮겨주면 그때부터 햇빛을 찾아 고개를 내밀고 열심히 뿌리를 정착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새싹을 땅에 심지 않는 것이다. 작은 화분같은 인큐베이터 개념의 틀에 흙을 채우고 여기에 새싹을 옮겨 적당한 크기의 묘목이 될 때 까지 실내에서 키워줘야한다. 땅에 바로 심었다가는 민달팽이 + 달팽이 떼에게 뷔폐를 제공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인내하기, 순치기
깻잎이 한 뼘 정도 자랄 때 까지 시간이 꽤 걸려 인내가 필요하다. 떡잎이 떨어지고 나면 세번째 잎 부터 깻잎같이 생긴 이파리가 나오게 되는데 이 첫번째 깻잎스러운 잎들은 먹을만큼 커지지도 예쁘게 자라지도 않는다. 그다음부터 나오는 애들이 해와 물을 충분히 머금는 경우 우리가 마트에서 사먹는 깻잎스러운 모양이 되는데 얘네들이 나올 때 줄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은 새끼깻잎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내가 올인하고 싶은 애를 남겨두고 얘들을 따서 없에줘야 하는데 이걸 순치기 라고 한다. 얘들은 sucker 여서 순치기를 안해주고 다 자라게 냅두면 영양이 골고루 가지않아 다 자라봐야 아기 손바닥 만한 사이즈가 된다. 밭에서 키우면 모든 잎들이 튼튼하게 자라겠지만 화분에서 키우면 영양분을 몰빵해줄 잎 몇개를 남기고 순치기를 해줘야 한다. 나는 처음에 마음이 아파서 다 살려뒀는데 그랬더니 잎을 뒤집어도 붉은기가 없고 앞뒤가 밝은 연두색인 깻잎향이 없는 잎파리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순치기에 진심이 되었다.
해충
발코니나 실내에서 키운다면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가든에서 깻잎을 키우면 영국의 달팽이들과 진하게 전쟁을 치루게 된다. 요즘 한국의 도시에서는 달팽이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내가 살고있는 런던은 비오는 날이면 거리에 달팽이, 민달팽이가 난무하고 특히 가든이 있는 집은 어른 손가락만한 민달팽이 + 달팽이 군단이 진을 치고있는걸 볼 수 있다. 정말 정말정말 정말정말정말 징그럽다. 근데 얘들이 깻잎처럼 향이나는 식물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두뼘 정도 열심히 키워놓은 깻잎 모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날은 기둥을 갉아먹어 주저앉아버린 모종이 발견되기도 한다. 정말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화가난다. 해충을 써봐도 비에 씻겨내려가 그 때 뿐이고 이게 또 내가먹을 식물 아래에 뿌려야 하다보니 찝찝하기도 하다. 이리저리 찾아보다 두 가지 효과가 꽤 괜찮은 방법을 알게되었는데 하나가 비어트랩이다. 달팽이들이 흑맥주를 꽤 좋아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흑맥주를 가득 부어 깻잎 주변에 묻어두면 다음날 아침 거나하게 취한 달팽이 시체들을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빠지고 빠지고 또 빠진다. 한도끝도 없다. 또다른 방법은 그물을 설치하는 것인데 이건 달팽이 보다는 청솔모의 공격을 막는데 효과적이다. 달팽이는 사실 사이즈가 제각각인데다 땅속에도 숨을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는 없지만 워낙 느려서 진입하는 길을 조금 막는 효과는 있다. 이전엔 그런일이 없었지만 올해는 유독 청솔모들이 화분을 파재끼는 날들이 많았다. 거의 매일 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작년 겨울 화분밑에 도토리를 숨겨뒀던게 습관이 되어 계속 파재끼는 것 같다. 얘들은 화분 위에 그물을 쳐서 모종이 어느정도 자랄 때 까지는 막을 수 있었지만 식물의 키가 커지면 그물에 닿기 때문에 걷어주었는데 이놈들이 요즘 또 와서 파재낀다. 아무래도 나무막대를 모서리에 꽂고 그 옆으로 그물을 둘러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100% 해충을 차단해주는게 아니라 나는 양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씨앞을 많이뿌려 살아남는 놈을 내가 취하는 쪽으로.
수확
깻잎을 3월 즈음 심으면 7월부터는 마트에서 사먹는 크기만큼 자라 먹고싶을 때 수확이 가능하다. 문제는 너무 많이 자라게 되어 처치곤란일 떄가 있는데 생으로 먹는게 아니라면 또 방법이 있다. 깻잎을 끓는물에 데쳐서 물기를 머금은 채 냉동시키면 떡볶이나 닭갈비 처럼 깻잎향을 내는 요리를 만들 때 쓸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정말 빠르게 데쳐야 한다. 오래 데치면 향이 다 사라지고 질긴 나물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겨우내 먹을 깻잎은 따로 냉동보관 하면 된다. 깻잎이 다 자라고 나면 위에 꽃이 열리는데 이 꽃에서 씨앗이 나온다. 다음해애 또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씨앗들이기 때문에 말려서 탈탈 털어 보관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는 해마다 속이 빈 씨앗만 나와서 여기까진 못해봤다. 화분에 심으나 땅에 심으나 항상 속이 빈 씨앗만 나오는데 뭐가 문제일까. 씨앗은 한국에서 쟁여오는 걸로.
가끔 한국의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로 내가키운 식물들을 보여주곤 하는데 나름 열심히 키운 깻잎들이 한국의 가족들이 보기엔 마냥 웃긴가보다. 그도 그럴것이 밭에서 키워 옆으로 위로 쭉쭉 자라는 한국의 깻잎들과는 달리 내 깻잎들은 관상식물처럼 위로 곧게자라 몇안되는 연약한 잎파리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맛만 좋으면 된다. 삼겹살, 감자탕, 떡볶이, 닭갈비 다 해먹을 수 있으니까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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