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마상에나... 외국살이가 쉽지 않을거란 예상은 했었지만 세번째 구직을 하게될줄이야. 연봉을 띄우려고 옮겨다닌게 아니다. 그냥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취업비자를 받아서 5년 존버한 뒤에 영주권으로 전환해 비자걱정 없는 삶을 살려던 계획은 일찌감치 빗나갔다. 워홀비자로 구한 첫직장 그리고 취업비자를 지원해준 두 번째 직장을 거쳐 학생비자로 석사에 1년을 쓰고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왔다. 다른점이 있다면 졸업후 영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2년짜리 비자를 받아서 그리고 일한 짬이 쌓여서 취업이 전보다 쉬워졌다. 취업 자체가 수월해졌을 뿐만 아니라 회사가 지원해주는 비자에 묶여있는 파워을의 삶에서 벗어났다는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내 기대에 맞는 회사를 만나기 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고 다소 고통이 따른다.
영국생활 초반에는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오퍼만 주면 군말없이 일하러 갔지만 이번엔 디자인과 개발에 양다리를 걸치는 애매모호한 포지션은 피하고 싶었다. 허나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그 애매모호한 포지션들이 나쁘지 않은 연봉에 일도 크게 어렵지 않을거란 예상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기울었다. 여전히 구직시장에는 적지않은 회사들이 그 '애매모호' 한 포지션을 구하고 있었다. 반대로 난다긴다 하는 스타트업들은 자바스크립트 프레임웍을 선호했다. React 지분이 9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지가 좀 빵빵하다 싶으면 React 경험을 필수로 요구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 기술과 경력을 가지고 안전빵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곳들과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으나 일해보고싶은 회사들을 추려 일주일에 열댓개씩 지원했다.
총 3주에 걸친 세번째 구직기와 그 중 기억에 남는 몇몇회사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첫 주에는 구직공고가 올라온지 꽤 된 회사들에 넣어서 그런지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시무룩해져서 두번째 주에는 새로 업데이트 된 구직공고들 위주로 지원을 했는데 내가 맘이 너무 급했었나보다. 첫째주와 둘째주에 지원한 회사들이 동시에 둘째주중부터 연락해오기 시작했다. 워홀시절엔 인터뷰 기회도 잘 안왔는데 (워홀러여서가 아니라 내 영어가 똥망이라서임) 이번에는 넣는족족 거의 인터뷰가 잡혔다. 두번째 주에 몰려오는 인터뷰가 많게는 하루에 세개씩 되었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 덕분에 서류광탈에도 우울해질 틈이 없었다.
가장 처음 eCommerce 회사와 인터뷰를 봤는데 여기는 한국으로 치면 메이크샵이나 카페24 같은 온라인쇼핑몰 전용 플랫폼인 Shopify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물론 전혀 써본적이 없었다ㅋㅋ. 이미 망한 느낌이었으나 첫번째 인터뷰에 잘될거란 기대가 없어서 요즘 인터뷰 추세가 어떤지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응했다. Shopify 이외의 질문들은 인터넷 쇼핑은 이미지 로딩이 생명인데 어떻게 퍼포먼스를 올릴것인가, 창고직원들이 일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한꺼번에 달려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SEO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정도였다. 살면서 한번씩 스쳐갔던 내용들이라 크게 당황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잘 하지도 못했다. 배짱 쌓는게 목적이었던 첫 인터뷰는 다음날 탈락메일을 받고 정리되었다.
두번째 회사는 작년에 스터디를 통해 알게된 스타트업인데 이름만 대면 알 큰 회사가 인수해서 나름 키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작년에 검색했을 때에는 슬로바키아에 본사가 있고 런던엔 포지션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런던에서 Frontend 포지션을 구하고 있었다. 회사 분위기는 스타트업 특유의 밝은 느낌이었는데 구인과정은 대기업 냄새를 풀풀 풍겼다. HR과의 첫 인터뷰를 25분정도 한 뒤 통과하면 서너번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고 했다. HR과의 인터뷰에 기술질문은 없을거라고 해서 별걱정 없이 들어갔는데 함정이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친구가 문제해결능력을 알아보기위한 퀴즈를 하나 내겠다면서 알고리즘 문제를 냈다. 자기는 코딩을 전혀 모르니 비개발자에게 너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 알고리즘을 이해시켜 보라는거다. 어찌저찌 설명은 했지만 맘에 안들었나보다. 다음날 여기서도 탈락메일을 받았다. HR인터뷰에서 코딩을 묻다니... 요즘 스타트업은 HR도 코딩하는구나... 한방 먹은 인터뷰였다.
이 외에 자잘하게 기억나는 회사들은 WordPress 만 쓸줄알면 되는 회사, 집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회사, 업무는 따분하지만 2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을 정도로 복지가 빵빵해서 홀릴뻔 한 회사 그리고 유니클로 가 있다. 유니클로는 처음에 보자마자 지원했는데 희망연봉을 너무 높게잡아서인지 그날 바로 서류탈락을 했다. 본인들 기준에 부합하는 저려미 직원을 못구했는지 계속해서 같은포지션 공고가 올라오길래 희망연봉을 조금 낮춰서 다시 지원했더니 인터뷰 약속이 잡혔다ㅋㅋ. 도대체 뭘 원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뷰를 보려고 했는데 그전에 가고싶은 회사에서 오퍼를 받게되어 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내 최종 선택은 의외의 회사였다. 스킬이 맞지않아 그냥 한 번 넣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이 회사는 내가 스페인으로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을 해왔다. 회사에서 제시한 인터뷰 날짜가 휴가와 겹쳐 그 뒤로 미뤄줄 수 있냐고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않아 그런가보다 하고 잊으려는 찰나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이 왔다. 대망의 첫번째 인터뷰에서 지금의 사수를 만났다. 한시간에 걸친 첫 인터뷰는 담백했다. 내 소개, 그리고 회사 소개를 한 뒤 내가 리액트의 개념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 몇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역으로 내가 던지는 회사에 대한 질문을 사수가 답변했다. 전 회사들과의 인터뷰에서는 비자 지원을 해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너희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개발자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이 무엇인가를 모든 회사와의 인터뷰에서 물어봤다. 그중에 지금의 사수가 준 답변이 꽤나 맘에들었다. 사수도 내가 맘에든다면서 두번째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세시간동안 진행되는 스킬테스트였다. 실시간 스크린쉐어로 세시간동안 테스트를 한다니 조금 막막했다. 다행히 알고리즘 공부하면서 외워놨던 문제들이 나와서 생각보다 빨리 풀었다. 이날 사수가 보고자 했던 부분은 제시한 문제를 풀 수 있는지 그리고 동료개발자와의 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뤄지는지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푼 문제에 사수가 아이디어를 제시해 조금 더 깔끔하고 효율적인 코드를 짤 수 있었다. 넉넉잡아 세시간을 예상했던 스킬테스트가 30분 만에 끝나자 사수는 만족해하며 나를 최종인터뷰에 초대하고싶다고 했다. 최종 인터뷰는 개발팀장과 나와 비슷한 포지션의 동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참석했는데 이번에는 기술질문 없으니 편하게 오라고 해서 정말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 이것 또한 나의 오산이었다. 기술질문은 모아니면 도여서 답을 아는 경우 코드를 쭉 적으면 나름 쉽게 끝나는데 비해 최종 인터뷰에서는 위기대처 능력과 내 성향을 평가하는 질문들이 다 영어로 넘어오다보니 나는 코딩문제 푸는 것 보다 여기서 받은 질문들의 뉘앙스를 캐치하는게 더 어려웠다. 비슷한 질문들을 그전에도 몇 번 받았는데 예를들면 윗사람들이 모두 부재중이고 아무도 내 질문에 답변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비개발자 동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뭐 이런것들이다. 누가봐도 답이 하나인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왜 하는건지 궁금했는데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HR이 인터뷰에서 꼭 해야하는 질문의 한 종류이기도 하고 실제로 상식외의 답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영어 스피킹 시험 같았던 마지막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날 까지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사이 WordPress 만 쓰면 되는 회사에서 후려치기 식의 연봉과 함께 오퍼가 날아왔고 다른 몇몇 회사들이 보내온 과제들을 하느라 또다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WordPress 쓰는 회사에서 받은오퍼를 보험이랍시고 쥐고있는게 그쪽한테 희망고문 같아서 거절메일을 보냈다. 연봉은 딜을 할 수도 있었지만 React로 만든 상업 프로젝트를 해보고싶은 마음이 커서 지금 회사에 더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다음날 연락을 주기로 했었는데 세번째 인터뷰를 본 당일 오후에 오퍼메일이 왔다. 인터뷰를 본 회사들 중에 여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취준을 존버하면서 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고작 3주지만 지긋지긋했던 구직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오퍼 수락을 위한 내 마지막 조건은 연봉이었다. 보통 회사들은 공고에 올라온 연봉범주가 예를들어 5~10 이라면 5를 부르거나 어이없게 3을 부르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넙죽 받지말고 다시한번 미팅을 잡아서 협상을 해야하는데 나는 이 과정이 적잖이 싫다. 하지만 행복한 직장생활의 시작을 위해 얼굴에 철판깔고 10으로 우기려던 참이었다. 막상 들어보니 그들이 제시한 내 연봉은 구인공고에 올라온 연봉범주에서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스킬테스트를 가장 빨리 풀고 회사와 성향이 잘 맞아 최고금액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그들의 시원시원한 진행에 나도 시원하게 오퍼를 수락했다. 이렇게 런던에서 나의 세 번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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