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장에서는 월 1회 금요일 오후무렵 술마시는 시간이 있었는데 두번째 직장은 매주 금요일이 술마시는 날 이었다. 내가 다녔던 두 곳의 회사 말고도 런던의 많은 회사가 구직란에 '술마시는 금요일'을 복지혜택으로 넣는다. 영국인들 술 좋아하는건 알지만 이렇게 대놓고 회사에서 판을 벌인다는게 초반엔 꽤나 충격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보면 회식도 근무의 일부인데 이런 방식으로 친목을 다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후 네 시 즈음 카페테리아 직원이 바퀴달린 카트에 가득 실어온 술병들을 달그락거리며 옮기는데 그 소리를 듣거나 멀리서 현장을 목격한 몇몇 미어캣들이 빠르게 소식을 알리면 여기저기서 신속하게 술통으로 달려든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에서 지원하는 공식적인 술자리는 퇴근시간까지 이어진다. 제공되는 술의 종류는 맥주, 와인, 샴페인 정도인데 맥주는 글루틴프리나 비건용으로도 준비해준다. 한번 모르고 비건용 맥주를 마셨는데 소화기능에 제약이 있는 친구들이 나때문에 맥주를 못마시게 되는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다음부터는 글루틴 프리나 비건용은 피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형태도 자유자제이다. 꼭 마시지 않아도 되며 부엌에서 과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셔도 되고 마시고싶은 술을 들고와서 책상에서 마시면서 업무를 봐도 된다. 어떻게 술을 마시면서 일을 한다는거지 싶었으나 어느새 맥주 한 병을 자리로 가져와 홀짝홀짝 마시며 금요일의 시작을 몸에 인지시키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인다는 신기함 이외에 또하나 놀랐던 점은 그 누구도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근시간 까지 기분좋을 정도로 즐기다가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은 퇴근 후 펍으로 이동해 2차, 3차를 이어나간다. 날이 좋으면 펍 앞 길가에 서서 가방을 다리사이에 둔 채 마시고 날이 추우면... 옷을 두껍게 입고 길에서 마신다. 겨울엔 덜하지만 그래도 밖에서 마시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여름엔 직장가의 펍 주변을 지나갈 때 벌떼들이 달려들 때 들릴법한 웅웅 소리가 날 정도로 펍 앞에 술을 한잔 씩 집어들고 일행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처음 영국에서 술을 마실 때 길이고 펍 안이고 서서마시는게 도무지 적응되지 않아 앉을 테이블이 없으면 빈 테이블이 있는 펍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는데 적응이 되고나니 서서 마시는게 오히려 편하다. 서서 마시면 떠나고싶을 때 주저없이 떠날 수 있고 가게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일정금액 이상의 안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되서 좋다. 이렇게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는 환경이라 날잡아 하는 진한 회식자리 대신 내키면 매일저녁 빠르게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더 흔하다. 집에 일찍 돌아가야 하는 동료들은 파인트를 물고기 마냥 서너모금에 헤치우고 빠르게 수다를 떤 뒤 자리를 뜬다. 술을 티타임 가지듯 마신다. 더치페이가 만연할 것 같지만 막상 술자리에 가 자리를 잡고나면 시키지도 않은 내 술이 손에 들려있기도 한다. 돌아가면서 내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술꾼들 네다섯명 정도가 펍에 가기되면 한 라운드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주자가 바에 달려가 술잔을 두손가득 안고 나타난다. 빨리 치고 빠지지 않으면 눈 깜짝 할 새에 네다섯잔을 받아먹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타이밍을 잘 못잡아 나는 항상 돈이 굳었다. 술 한 잔 사주고싶은 은인과 술자리를 한다면 펍에 도착하자마자 주문을 받고 바텐더에게 돌진해서 술을 공수해 와 그의 손에 들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정신차리고 보니 4-5잔의 공짜술을 비우고 있을 것이다. 회사는 금요일 이른 오후 공식적으로 술판을 벌여 그렇게 주말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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