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퍼블리셔라는 포지션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했다. 영국에 넘어와 보니 퍼블리셔라 불리는 포지션은 없었고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UX Engineer 혹은 Creative developer 라고 불렀다. 그렇다 사람들은 나를 첫직장에서는 Creative Developer 라고 불렀고 주로 하는일은 React로 만들어놓은 뼈대에 CSS를 입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비전없는 포지션이다. 이직할 때에는 조금 더 Front-end Developer에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다행히 새 직장에서는 JavaScript와 NodeJS를 주로 쓰게되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회사에서 개발한 자체 CMS 가 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이 CMS 영업에서 보여줄 데모파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CMS 를 만든 개발자들은 아주 기본적인 기능들만 테스트 해 보기 때문에 실제 고객 입장에서 간지나는 결과물을 내기위해 무거운 이미지를 넣거나 애니메이션을 떡칠 한 파일이 잘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상상속의 결과물을 CMS 에 구현해보면 당연히 잘 안돌아간다. 그럴 땐 ㅇㅇ이 하고싶은데 잘 안되네... 개선좀 해줄래? 하고 개발자들에게 리포트 하는것도 업무 중 하나이다. 우리 서비스가 이렇게 멋진 결과물도 쌩쌩 돌아가게 만든다는 걸 어필해야 하기때문에 일은 항상 넘쳤다. 미국에 있는 브랜치와 협업을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에 따라가서 데모파일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서포트 하는 날들도 있었다. 사수는 주로 미국과 베를린에 출장을 갔고 그런 날이면 내가 사수 대신 프로덕트 오너들을 응대하기도 했다. 나는 영어를 똥망으로 하니까 출장을 보내진 않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폴란드 가서 자매회사에 우리 CMS 사용법을 교육하러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덕에 2박3일 폴란드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 올린 데모가 잘됐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일은 시도때도없이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화장실 갔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붙잡혀 일감을 받는 상황도 생겼다. 사수와 둘이 시작한 팀이 7명으로 불어났고 화장실 다녀오다 일감 받아온 내 호구인증썰은 두고두고 회자되어 우리팀에 업무를 건내주는 규칙을 만들어 회사에 뿌리게 되었다. 회사 내에 애매한 팀 위치덕에 정치싸움에 휘말려 사수와 생이별을 할 뻔도 했고 프로젝트매니저가 없어 사수가 그 역할을 대신하다가 회사에서 임시 프로젝트매니저를 돌아가면서 배정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일년 반 정도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NodeJS 패키지들을 이용해서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수 최애인 GreenSock으로 귀티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게 식은죽 먹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현타가 왔다. LinkedIn 구인공고를 보면 ReactJS나 VueJS 혹은 Angular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선호나는데 나는 그저 Vanilla JavaScript 쓰는것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었다. 개발자로서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회사에서 시간이 빌 때에 ReactJS 강좌를 챙겨봤다. 사수가 그걸 보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프로덕트 팀에 나를 보내주려고 했다. 의도는 고맙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현되지 않았다 ㅋㅋ
이 회사를 계속 다니면 고만고만하게 먹고살 수는 있지만 시대에 뒤쳐지는 개발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직업이 산악가인데 동네 뒷산만 주구장창 타는 것 처럼 말이다. 그 즈음 엉뚱하게도 머릿속에 이따금씩 '석사'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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