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직장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워홀비자 종료를 5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 되어 매니저에게 취업비자로 전환해 달라고 언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 사정을 잘 알던 매니저는 비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우리팀 대장에게 달려가 비자요청을 지원해 줄 것에 대한 승인을 받고 순식간에 HR까지 그 소식이 넘어가게 되었다. Tier2 취업비자를 혼자 준비했다는 친구들도 있어서 나도 어쩌면 자비로, 그리고 혼자 모든걸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부담감을 안고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HR이 모두 도맡아서 진행해 주었다. 회사에서 변호사를 선임했고 선뜻 5년짜리 비자 + 비자신청 비용을 전액 지원해 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랙시트가 실행되기 전이어서 취업비자를 받기위한 조건이 조금 까다로웠다. 먼저 구직시장에 일정기간동안 내 포지션을 구하는 구인공고를 올려 지원자들을 인터뷰 했음에도 적정자를 찾지 못했음을 증명해야 했다. 여기에 영어점수(지긋지긋한 아이엘츠) 와 최소연봉기준을 합산한 점수를 내어 일정기준을 넘기면 무리없이 비자가 나온다고 한다. 워홀비자에서 취업비자로의 전환이 영국안에서 불가능해 나는 2주간의 휴가를 내고 비자신청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갔다.
변호사가 비자어플리케이션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해서 그걸 보내주고나면 어플리케이션 초본이 날아온다. 그 뒤에 크고작은 오류들을 짚어주면 그 부분을 어필하는 커버레터를 한장 더 작성해 어플리케이션 맨 앞장에 붙여준다. 변호사랑 작성하는 어플리케이션이어서 그런지 커버레터의 말투도 나는 흉내도 못낼 전문가 냄새가 폴폴 났다. 변호사가 알려준대로 한국에 들어가서 결핵검사를 받고 결과지가 나오자마자 단암센터에 가서 신청서를 제출했다. 고맙게도 회사에서 급행서비스까지 결제해줬다. 그래서인지 정확히 워킹데이 5일만에 비자가 나왔다. 왜그랬을까... 멍청하게도 나는 워킹데이 바로 5일 다음날을 출국일로 잡아놔서 괜히 비자 나왔다는 문자 받기까지 심장이 쫄려서 밥먹다 체하고 집을 떠나면서는 눈물즙을 질질 짰다. 1년만에 들어간 한국이었지만 그저 비자걱정에 2주를 보내고 비자를 받은 후에는 빨리 런던에 가서 BRP를 픽업해야 살것만 같았다.
영국에 돌아와 BRP를 픽업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지정우체국에 세번인가 들락거렸는데 카드가 안왔다는 답 뿐이었다.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내니 변호사가 다시 어필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그러고 며칠 후에 BRP를 받을 수 있었다. 수령한 카드를 스캔해서 변호사에게 보내주고나니 비로소 맘을 놓을 수 있었다. BRP를 수령해서 변호사와 회사측에 보여주는걸로 비자업무가 마무리되는 모양이었다. 영국행을 결정함과 동시에 계획했던 취업비자를 워홀 1년 반 동안 우여곡절 끝에 받고나니 속이 후련할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저 고개 하나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앞으로 영국에서의 5년간의 거주가 보장됐지만 달리말하면 5년간 현대판 노예로 존버 해야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앞이 까마득 해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그래도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좀 멍때리고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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