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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직장인 2019

[런던직장인] 프론트앤드 개발자의 두번째 직장 - 코로나

회사 스폰으로 취업비자를 무사히 받고 어영부영 반년이 지나갔다. 이제 이직을 하지 않는 한 이 회사에서 5년 존버해야한다는 생각에 취업비자로 지낸 기간은 상상했던 것 보다 즐겁지 않았다. 회사 눈치를 보느라 하고싶은 말을 못하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정말 현대판 노예가 되고 만 것인가 싶었다. 이 시기에 우리팀은 여전히 R&D에 힘을 쏟고 있었고 회사 내에서 위치가 애매모호했다. 나조차도 내가 뭘 하는지 명확하기 설명하기 어려웠다. 허나 짬이 찰수록 생활에 익숙해 져 들어오는 일을 별 문제없이 받아치면서 바뀐사수 똥싸는 꼴에 부들부들 거리면서 그렇게 지내던 중 팀 구조가 계속해서 바꼈다. 직접적으로 수익을 만들어 내는 팀이 아니여서인지 제대로 된 인력투입이 없었고 팀장들은 그 점에 매일 화가 나 있었다. 여느회사가 그렇듯이 짬이 차고나면 주변 사람들이 연봉이 낮다는 둥 이런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둥 회사에 대해 푸념하는게 더 잘 들린다. 내 머릿속은 5년 존버로 차있어서 우리팀 똥싸개들이 나보다 연봉을 더 받던지 말던지 안중에 없었다. 연말엔 다들 내년엔 연봉협상을 해서 얼마를 올리네 팀에 어떤 기술을 도입하네 마네 할 때 나역시 한국으로의 휴가계획을 짜느라 들떠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공짜로 열어주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파티, 크리스마스 전부터 연초까지 이어지는 긴긴 휴가를 지내고 와 벅찬 마음으로 새 해를 시작하려는 때 여기저기서 우한폐렴 이라는 단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무지했던 나는 사스나 조류독감처럼 뉴스에서 떠드는 그러나 나에겐 전혀 해가 가지 않을 그런 바이러스 중 하나라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한폐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조만간 회사 전체 회의에서 South Korea 가 튀어나왔다. 자랑할 일이 있을 때 언급되고싶은 내 나라가 여행 금지국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 해에 한국에 못들어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연이어 우한폐렴이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런던의 몇몇 회사는 건물을 셧다운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재택근무가 하고싶어 우리회사는 언제 보내주려나 회사친구와 노닥거리는데 그날부터 노트북을 들고 출퇴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CEO가 밀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또 며칠 후 우리 사무실도 전원 재택근무 구조로 바뀌었다. 이사한 지 며칠 안된 집에서 간이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회사도 이런 구조의 재택은 처음이라 온라인 미팅에서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다들 어찌어찌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보려 했으나 이런 노력에 엿먹어 보라는 듯 회사는 팀에 몇몇을 furlough 보내기 시작했고 그중에 나도 껴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furlough를 보내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팀에선 나와 내 사수가 당첨 되었다. 휴직기에 들어가는 날짜도 각각 달랐는데 아무래도 유급휴직이라 돈 많이드는 애를 빨리 짤라내야 했던게 아닐까 예상해본다. 두달간의 유급휴직 후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사수놈이 조만간 우리 짤릴거라고 입방정을 떨고 살아남은 팀원1도 내가 꼭 짤릴 것 처럼 기분이상한 위로를 했다. 

 

유급휴가 동안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영국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유급휴가 급여를 지원할 예정이라 해서 멘탈잡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중 모회사가 우리회사와 다른 회사를 합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합병으로 한 번 데인적이 있어서인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느낌이 쎄 했다. 역시나 며칠 후 CEO로 부터 정리해고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평소 별 교류가 없던 높은 양반이 미팅을 신청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역시나 미안하다는 소리와 함께 정리해고 위로금 어쩌구저쩌구 마지막 근무일은 언제까지 하는 등 뻔한 이야기를 해댔다. 한 번 해봐서인지 담담했다. 그 상황에서 깽판을 친다고해서 달라질게 없다는걸 너무 잘 알고있어서 그저 그 10분간의 미팅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미팅이 끝나고 허탈함에 그저 멍 했다. 뒤늦게 내가 해고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팀장이나 예전 사수는 전화를 걸어와 이건 부당하다 회사를 위해 싸우겠다고 열을 냈지만 현실은 당사자인 내 피부에 가장 잘 와닿았기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 계획을 세웠다. 

 

두 번에 이은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나서 왜 열심히 산 나에게 이런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세상이 밉고 속이 쓰렸다. 며칠 울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영국에서 그다지 경쟁력이 없다는게 보였다. 또다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모든 회사들이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판에 이 실력으로 재취업을 해봤자 몸과 정신이 상해 나가 떨어질게 뻔히 보였다. 한다고 한 들 나는 또다시 취업비자의 노예가 되어 비슷한 처우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회사내에 뚜렷한 포지션 없이 어영부영 답답하게 지내던 때에 영국은 석사가 1년이란 얘길 어디서 듣고 학생으로 돌아가서 딱 일년 걱정없이 공부만 하고 지내보고 싶다던 바램이 떠올랐다. 워홀로, 취업비자로 지내면서 차곡차곡 모아온 돈을 석사에 몰빵하기로 했다. 마침 졸업비자가 부활 해 영국 내에서 학사 이상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2년짜리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석사라는 다음 목표를 안고 두번째 회사와도 그렇게 이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