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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직장인 2019

[런던직장인] 프론트앤드 개발자의 두번째 직장 구하기 2

면접을 보기로 한 두 회사들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두 회사가 하루 차이로 약속이 잡혀 먼저 리치몬드에 있는 에이전시로 갔다. 워털루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리치몬드 역에 도착해서 지도를 따라 한 15분 정도 걸었더니 낮은 흙언덕 위에 덩그러니 건물이 보였다. 겁나게 떨렸지만 사무적인 표정을 장전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 테이블에 사람들이 몇명 모여있길래 면접보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알고보니 그 바는 회의용 테이블 이었는데 내가 안내데스크로 착각하고 나 손님이니 안내하라고 회의중인 사람들 앞에서 떠든거다 ㅋㅋㅋ. 민망함 1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시 얼굴에 당당함을 장착하고 면접관을 기다렸다. 곧이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키큰 청년이 나와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남자는 자신을 개발팀장이라고 소개했다. 왜 주니어 포지션에 지원했는지, 어떤 개발자로 거듭나고 싶은지, React와 Angular를 업무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지, 현재 업무는 어떤식으로 진행되는지, 왜 이직을 하는지 등 캐주얼하게 물어봤다. 안부 묻듯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은 대화여서 크게 대답하기 어려운 점이나 굳이 포장해야 하는 부분도 없었다. 이후에는 자기네 회사와 팀 구조, 회사가 한 프로젝트 등을 설명해 주었다. 주니어 포지션이라 따로 스킬테스트는 없지만 다음 인터뷰는 팀원 + 임원 면접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첫 면접이 생각보다 가볍게 끝났다. 

 

 바로 다음 날 사우스뱅크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다. 이 회사는 면접 전에 테스트를 몇 개 내 줬는데 리크루터의 실수로 테스트 파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리크루터가 보내온 메일에는 NodeJS와 Greensock, Google Sheet API, Git에 대한 간단한 설명서가 적힌 메모 뿐이었다. 테스트 파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더니 정말 저게 다라고 했다. 저걸로 무슨 테스트를 만들어 가라는거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주말동안 꼼지락 대 봤지만 저것들 만으로는 시각적으로 보여줄게 없어서 결국 노트북에 깔아서 실행해봤다는 증거만 보여줘기로 했다. 사우스뱅크 회사는 미국에 본체를 두고있는 대기업에 속해있는 에이전시였다. 회사에 속한 모든 에이전시가 두 개의 빌딩에 층별로 입주 해 있었다. 안내데스크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고 담당자를 기다렸다. 곧이어 나와 통화했던 리크루터가 내려와서 사무실로 안내해줬다. 전화통화를 했던 개발팀장과 함께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서 리크루터가 타준 차를 마시면서 면접을 시작했다. 그전날 봤던 리치몬드 회사의 개발팀장과 연령대는 비슷해 보였는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개발팀장은 면접에서 할법 한 사소한 질문은 전혀 하지않고 자기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와 사용하는 툴, 언어 등을 한참 소개했다. 그러고 내가 한 과제를 보자고 했는데 우리둘은 그제서야 리크루터가 파일을 잘못보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한 주 더 줄테니 과제를 해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얘 혼자 말하고 나는 듣기만 했는데 한시간 반이 흘러있었다. 둘 다 진이 빠져서 다음주에 보기로 하고 건물을 나왔다. 

 

 사우스뱅크 회사의 리크루터로 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제대로 된 테스트 파일을 받았다. 버튼을 누르면 시차가 바뀌는 아날로그 시계, HTML 태그를 이용해 비디오 플레이어 만들기, NodeJS와 Google Sheet API를 이용해 데이터 받아서 브라우저에 출력하기, 패션웹배너 만들기 이렇게 네 개의 과제를 Greensock과 Git을 적절히 사용해서 주말동안 완성 해야했다. JavaScript를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어쨋든 무조건 붙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구글링을 해가며 만들었다. 그대로 베끼면 의미가 없는걸 알기에 내걸로 만들려고 애쓰다 보니 이 과제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2차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리치몬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최종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하루차이로 두 회사와 2차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날은 첫 면접에서 못봤던 댕댕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2차 면접은 각 팀의 대표 직원들과 1:1로 이루어졌다. 투명 유리방에 나를 넣어놓고 자기들끼리 왔다갔다 했다. 댕댕이가 테이블 밑에 엎드려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임원, 카피라이터, 디자인디랙터, 개발팀 시니어개발자 2명, 사장 까지 사람이 바뀔 때 마다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떠들었던 것 같다. 공통적인 질문은 왜 이직을 하는지, 회사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정도였고 간단하게 자기가 하는 업무와 회사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심리적으로 가장 빡셌던 사람은 바로 사장이었는데 딱 봐도 대빵일 것 같은 백발의 통뼈 할아버지가 내 얼굴만한 찻잔에 밀크티를 가득 타서 들고왔다. 평범한 질문들로 시작해 대답을 이어나가는데 중간에 끊더니 내 영어실력에 대해 물어봤다. 객관적으로 영어를 어느정도 하느냐고 물었다. 연륜으로 내 얄팍한 생존영어를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더니 고추밭인 팀에 혼자 여잔데 괜찮겠냐고 하길래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너털웃음을 껄껄 웃으면서 좋아하셨다. 그렇게 짱면접까지 마치고 결과를 전해주겠다며 최종면접을 마쳤다. 

 

 다음날 사우스뱅크로 최종면접을 보러갔다. 그 날은 개발팀장과 디자이너가 함께 회의실에 들어왔다. 과제를 보여줬더니 브라우저로 확인을 하는 족족 박수를 치고 따봉을 날리면서 감탄스러워 했다. 코드를 혼자 짠거냐고 묻길래 솔직히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했더니 별로 개의치 않았다. 코드를 설명해 보라길래 그 짧은 영어로 이거이거 만들어서 여기여기 넣고 이래저래 했다 고 하자 니가 어떤 원리로 이게 돌아가는지만 알면 된다고 했다.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팀장이 나를 자기자리로 데려가서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 었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한명씩 악수하면서 인사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출구까지 데려다주면서 얘가 대뜸 '나는 너를 채용하고싶어!' 라고 했다. 땡큐땡큐를 외치면서 건물을 나왔다. 얘가 나를 채용하고싶어 한다고 해도 비자지원에 대해 회사와 협의가 되어야 최종적으로 채용이 되는것이기 때문에 기뻐하긴 일렀다. 

 

 최종면접 후 두 회사에서 오퍼를 주고싶다고 연락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빠른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지만 두 회사 모두 비자지원 여부를 확인해야 했기에 침착하고 협의에 들어갔다. 리치몬드 회사는 다니고있었던 회사와 연봉이 같았고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 금전적으로는 손해였다. 하지만 팀 내에 세 명의 시니어 개발자가 있어서 배우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고 가족같이 단란해 보이는 분위기가 매력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비자가 제대로 협의되지 않아 포기하게 되었다. 그 해에 취업비자를 위한 최저연봉 기준이 갑자기 올라가 £30,000 였던게 £50,000을 넘어버려 왠만한 고액연봉자 아니고서는 취업비자 신청이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곧 다시 £30,000으로 내려가 리치몬드 회사와 면접을 볼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도 회사 담당자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회사 입장은 최저연봉 기준이 내려가면 지원을 해주겠다 였는데 최저연봉인 이미 내려가 있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았다. 중간에서 다된 밥에 재 뿌리게 생긴 리크루터는 애써 불쾌함을 감추며 내가 뭘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반대로 사우스뱅크 회사는 연봉이 더 높았고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였다. 비자 역시 수습기간을 무사히 통과하고나서 팀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회사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 입사와 함께 비자지원을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렇게라도 말해주니 고마울 다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지긋지긋한 구직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더 기울었던 사우스뱅크 회사의 오퍼를 수락하기로 했다.

 

 첫 구직을 하기까지 5개월이 걸려서 두번째도 빡세리라 예상했었다. 리크루터들과 회사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단단히 무장하고 시작했는데 두 번째 구직은 2주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빠른 전개가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나름의 고찰을 해보자면, 첫번째로 CV에 영국에서의 근무경험이 추가되었고 두 번째는 영국의 구직시스템에 대한 감각이 생겨 삽질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두번째 구직이 마무리 되고 당분간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