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주거환경이 뒤죽박죽 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뭔가 키우고싶어 한인 커뮤니티에서 씨앗을 수집했다. 받은 씨앗들 중 깻잎만 네 팩 이었는데 심어보니 하나같이 무싹이 났고 다른 씨앗들은 발아율이 꽝이었다. 블로그 글들 보면 다이소 씨앗으로 잘만 키우던데 유통기한 직전에 심어서였을까 나에게 온 씨앗들은 전부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좋은 마음으로 (그것도 엄청많이) 나눠주신건데 예상치못한 결과와 불량씨앗들을 돌본 내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뒤늦게 4월 중순 즈음 씨앗나눔에 다시 참여했는데 이 땐 발아율이 꽤 괜찮 5월 초에 발아에 성공했고 중순 즈음에는 베드에 옮겨심었다. 총각무, 김장무, 두메부추, 오이고추 이렇게 네 종류의 씨앗을 심었는데 한 달이 지난 요즘 깻잎키우기 이후 처음으로 식물키우는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가장 키우기 쉬운 채소가 무우 라는데 그걸 몰랐던 초반엔 왠지 커다란 무우를 생산해 내려면 갖은 노고를 겪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맘을 단단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우는 발아가 정말 빠르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 걸맞게 떡잎이 꽤 크다. 보고있으면 자이언트 베이비 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쑥쑥 크더니 최근엔 이 떡잎이 엄지발가락 만해졌다. 씨앗을 줄로 뿌려서 나중에 솎아내야 한다는데 이걸 모르고 인큐베이터에 자잘하게 하나씩 심었던 터라 나중엔 베드에 옮겨줘야 했다. 다들 예쁘게 발아했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베드에 심고 남은애들은 화분에, 미니베드에 옮겨 심었는데 같은 날 발아한 씨앗들인데도 역시 땅이 크고 해가 잘드는 베드에 심은 애들이 무섭게 자란다. 자고 일어나면 훌쩍 커져있는 무우를 매일 관찰하다보니 메인 줄기가 점점 두꺼워지다 톡 터지면서 뿌리가 비대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반들반들한 무의 모습이 되가는걸 알게됐다. 처음엔 줄기 터지는거 보고 이거 망한건가 싶었는데 며칠 더 놔두니 이 부분이 반질반질한 초록색의 무우 질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내새끼도 아닌데 너무 기특하다. 결국 먹으려고 키우려는 채소의 성장을 기특해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다.
키울 때 마다 성장이 시원치 않아 몇 번의 고배를 마셨던 부추는 이번에도 비리비리하게 자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원래 얘들은 키우는 시간이 긴 식물이었다. 무우가 2달, 부추가 5달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작아서 금방 키워서 먹는건 줄 알았으나 반대이다. 부추가 씨앗을 깨고 나와서 고개를 쳐 들려고 아등바등 하는 초반엔 비리비리한 모습인데 시간이 지나면 두꺼운 머리카락처럼 땅으로 퍼지는 모양새가 된다고 한다. 부추 씨앗 한 줌은 화분에, 다른 한 줌은 미니베드에 심었는데 둘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이고 화분에 심은 애들은 흙이 달라서 그런지 나중에 해 잘드는 곳에 옮겼는데도 더디게 큰다. 생일선물로 받은 두메부추 씨앗과 다이소산 부추 이렇게 두 종류를 심었는데 여기서도 다이소산 부추 씨앗은 발아할 기미가 안보인다.
같은 흝에 옮겨심은 오이고추 역시 가장 먼저 발아된 씨앗이라 쑥쑥 크겠거니 했는데 부추를 옮겨싶었던 문제의 흙에 심은 이후론 죽었나 싶을 정도로 떡잎에서 성장을 멈췄다가 최근 조금씩 새 잎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래도 너무 느리다. 성장통을 앓는건가? 따로 거름을 주진 않지만 물은 매일매일 흠뻑 주고 또 얘들이 잘 자라고 있는건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서 한달 하고 열흘정도를 키웠다. 무우는 삼주 정도 있다 수확이 가능할 것 같고 부추와 고추는 좀 더 둬봐야겠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여름날씨가 열흘 정도인 영국에서 식용채소를 키우는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날이 풀리는 시기가 느리기도 하고 한겨울엔 꽁꽁 어는 날씨도 별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해가 짧아지기 전까지는 아무때나 심어도 되는것 같다. 땅이 깊고 해가 잘 드는 배드에 심은 애들은 생각보다 아주 잘 자란다. 처음 씨앗을 심은 날의 설렘은 로또를 샀을 때와 비슷하다. 그리고 폭풍성장 해 매일아침 달라져있는 애들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어서 자연으로부터 도파민을 조금씩 주입받는 느낌이다. 올겨울엔 냉이와 더덕같은 애들도 심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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