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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살이/고독한 직장인 2024

[일상] 엄마 영어학원 보내기

엄마와 한달간 영국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항상 그립고 보고픈 엄마여서 한달이란 시간이 모자랄거라 생각한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상하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립던 마음이 가시고 혼자있고 싶어진다. 자꾸 다투고 힘들어져서 왜이럴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있고 나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온 기간이 나름 긴지라, 두 성인이 고집대로 서로를 통제를 하려하니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기대와 어긋나는, 행복이 아닌 고통을 수반한 힘든 시간이 될 것이 눈에 보였다.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마음에 여유가 나오는 사람이라 이번엔 엄마의 시간을 갖는 방법을 알려드리기로 했다.  

 

성인이 혼자 해외여행을 하려면 인터넷(스마트폰)과 비상시 쓸 수 있는 현금, 그리고 어느정도의 깡이 있어야 하는데 전화와 현금은 금방 해결이 되지만 낯선 나라가 주는 위압감은 익숙해지기 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내가 한국을 떠날 무렵 우린 이런날이 올거라 예상해 엄마의 영어공부를 시작했었다. 몇 년에 걸쳐 화상영어나 인터넷 강의를 꾸준히 들어 얼추 알파벳과 단어읽는 법 까지 떼고 문법오류가 있을지라도 단어를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을 비롯한 시댁식구들 즉 원어민을 만나면 말문이 턱 막혀버리니 당연히 엄마의 언어를 유일하게 알아듣는 나에게 의존도가 높아져 2인3각을 주구장창 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다보니 누구보다도 독립적인 엄마가 딸하나 보기위해 낯선나라에 와서 지내는 동안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서로에게 건강하지 못하리라 판단되어 이 나라가 주는 위압감을 깨부시고자 엄마를 현지영어에 빠트리기로 했다.

 

지인들이 농담인 줄 알고 웃을 정도로 조금 엉뚱한 아이디어긴 한데 그래도 우리집안 여성들의 생존력과 독립성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동네 어학원에 엄마를 등록했다. 어학원 비용은 충격적이게도 너무너무 너무너무 비쌌다. 한국 영어학원 보다는 비싸도 지방이라 얼마 안하겠지 생각하고 등록했는데 주 5일 하루 세시간씩 2주에 백만원이 나갔다. 그래도 지금아니면 언제 엄마를 어학연수 보내보겠나 싶어 눈 딱 감고 냈다. 학원 홈페이지를 보니 좀 허술해 보였는데 알고보니 외국에서 오는 학생들의 픽업부터 하숙집까지 연계해주는 전문적인 곳 이었다. 등록을 하고나니 입학허가서 레터를 보내주고 레벨테스트 폼을 제출하란 미션을 받았다. 백 개 정도의 문장완성 문제들이었는데 대충 훑어보니 나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몇 개 있었다. 한시간 정도 문제를 풀고 폼을 제출한 뒤 첫수업날에 맞춰 책가방을 대강 챙겼다. 

 

대망의 첫날인 오늘, 출근 전 남편과 함께 엄마를 학원에 모셔드렸다. 엄마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자니 부모가 나이들면 자식과 입장이 바뀐다는 말이 와닿았다. 학원에 가서 헬스폼을 작성한 뒤 웰컴키트 비스무리한 폴더를 받고 선생님께 엄마를 인계했다. 남편과 내가 선생님과 영어로 떠드니 엄마는 다시 조용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떨어지는 느낌을 너무 잘 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환경에 처해있는걸 보는건 그다지 달가운 느낌은 아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있자니 맘이 짠하기도 하지만 이 시간을 지내고나면 엄마가 더 단단해지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 독립적으로 보낼 수 있을거란 믿음이 있어서 나도 이 불편함을 참고 넘기기로 했다. 혹시 내가 고요한 엄마의 삶에 불필요한 잡음을 넣은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 보고 느낀 조금 더 넓은 세계를 엄마도 누렸음 하는 맘이 더 크다. 

 

하루 중 오전 세 시간 정도의 짧은 수업이지만 혹시 그동안 선생이 불친절하게 대해 엄마가 주눅들지 않을까, 어린 십대 애들이랑 한 반이 되어 엄마혼자 붕 떠버린 느낌을 느끼진 않을까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를 가지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다 싶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후다닥 집에가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점심을 해놓고 창밖으로 흐느적 흐느적 걸어오는 엄마를 보고있자니 반갑고 또다시 짠해졌다. 집에 돌아온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짠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게 학원이 너무너무너무 재밌었고 더 오래 다니고싶고 올 때 마다 가고싶다고 했다. 선생님도 너무좋고 수업도 재밌었다고. 이맛에 돈 쓰는구나 흐뭇했고 당사자는 즐거웠다는데 괜히 내가 긴장한 하루였다. 엄마 올 때 마다 학원 보내드리려면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