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면서 봄이되면 빠지지않고 명이나물(aka 산마늘)을 따러간다. 한국에서 삼겹살 먹으러 가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바로 그 명이나물이 이곳에선 잡초취급을 받아 물가 근처 수풀에 가면 지천에 깔려있는걸 볼 수 있다. 요 몇 해 명이나물의 인기가 급부상해 런던만 해도 명이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곳은 아직 수요가 공급을 못따라가서인지 매년 가는 스팟에서 양껏 따올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명이나물 따기가 연중행사로 자리잡아 어둡고 축축한 유럽의 겨울을 견뎌내는데 나름 좋은 동기부여를 준다.
2월 말에서 3월 초가 되면 슬슬 작은 이파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3월 중순에서 4월 초 까지 꽃대가 올라와 이때쯤 쇼핑백과 장갑을 챙겨 명이헌팅에 나선다. 첫해엔 기세등등하게 가서 반경 1미터는 따고올 줄 알았으나 막상 이파리를 따다보면 눈앞에 1미터만 따고 와도 선방 할 정도로 양이 꽤 된다. 올해는 적당히 따겠다고 다짐하고 길을 나섰는데 왠걸 주변에 고사리도 보인다. 슈퍼에 파는 말린고사리만 봐와서 생고사리가 이렇게 두껍고 통통한지 몰랐다. 고사리를 딴다기 보다는 꺾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은게 뚝 뚝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수수깡 부러지듯 나는 소리가 왠지 살아있는 생명을 더 잔인하게 잘라내는 느낌이어서 내심 미안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꺾음) 나중에 집에와서 시아버지께 들은 말로는 고사리가 주변에 식물을 못자라게 하는 민폐식물이라 막 따도 상관없다고 한다. 내년엔 조금 더 과감하게 따보기로 한다. 하지만 데치고 말리고 불리고 지지고 볶고 다 하다보니 손이 꽤 많이가서 굳이 이 짓을 또 해야하나 싶다. 한국에선 불린고사리나 말린고사리 구하기가 쉬워 별 관심이 없었는데 타국살이를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집착스러워진다.
작은 이파리들을 조금 캐와서 화단에 심어볼까 했으나 흙이 질어 어린잎이어도 캐는게 쉽지 않고 또 얘네들은 아직 꽃대가 안올라와 캐와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씨앗을 받기로 했다. 얼마 후 꽃이 지고 씨주머니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열리는데 덜 여물었을 때 터트려보면 안에 만들어지고있는 씨앗도 보이고 마늘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액체도 나온다. 터트리지말고 그대로 두면 나중에 바짝말라 씨주머니가 열리면서 검은깨 같은 씨앗이 후두둑 떨어진다. 명이를 화단에서 키우려면 3-5년 정도 돌봐야 한다는데 일단 냅다 뿌려놓고 알아서 크게 둬봐야겠다.
작년과 재작년엔 명이로 장아찌 뿐만 아니라 스콘, 전 등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그다지 감동스러운 맛이 아니었어서 올 해는 장아찌로 전부 담궜다. 일년내내 고기먹을 때 곁들여먹기 좋은 든든한 식량이 완성되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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