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의 근무기간이 평균 1년 N개월 정도인 내가 꽤나 맘에드는 회사를 만나 군소리 없이 2년을 채워가고 있다. 그 동안 이직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게 의아해 혹시나 놓치고 지나간 이직욕구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틈틈히 자기검열도 해봤다. 일은 여전히 재밌고 성가시게 하는 이가 없으며 월급이 따박따박 나온다. 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삼박자가 이직 생각으로부터 철통방어를 해왔으나 낙하산과 부딪히고 나서 본격적으로 회사가 싫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와 나의 입사일은 두 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왜 입사초반이 아닌 이제와서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걸까? 그녀와의 마찰 이전 까지는 일 배우기에 급급해 내 권리를 주장하거나 불편함을 느낄 틈이 없어 모든 상황을 묻어넘겼다. 일이 어느정도 손에 익고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 들, 내가 받지 않아도 되는 부당한 대우 등등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더이상 참고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들이받았고 파재껴진 감정은 원상복구가 되지 않고있다.
그 이후 낙하산과 나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전기철조망 같은게 쳐져있어서 일대일로 접촉할 일은 거의 없다. 팀 채팅방에 낙하산이 불특정 다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메세지를 보내와도 나는 답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낙하산에게 접근금지령을 내려놔 나한테 배울 하는 업무도 굳이 다른 동료에게 배우도록 세팅해놨다. 모두가 휴가가고 낙하산과 나 단 둘이 남지 않는 한 협업할 일은 없을것 같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바로 그녀의 존재감이다. 함께 일을하지 않더라도 매일아침 스탠드업에서 듣는 그녀의 목소리, 팀 채팅방에 올라오는 그녀의 질문들 이 모든게 회사가 낙하산으로 사람을 채용한 불공평한 곳임을 상기시킨다. 연고없이 들어온 직원이 받았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대우들도 낙하산이 개입된 상황에선 색안경을 쓰고 보게된다. 안하려고 할수록 더 강해지는 안좋은 습관이 들어버렸다.
그녀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내 맘에 불을 지펴 기분이 우중충할 때 마다 링크드인을 열어본다. 아무 포스트나 골라서 읽어봐도 우리회사보다 혜택이 많다. 복지가 좋은 회사일수록 지뢰받인 건 알지만 복지도 없고 낙하산 똥밭인 것 보단 낫지않나? 혼자 씩씩대며 이회사 저회사 기웃거리다 다시 현생으로 돌아와 어찌저찌 업무를 마무리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회사가 나를 건들인 적은 한 번도 없다. 회사 대 나는 정말 이상적인 관계다. 이 작은 회사가 주는 자율성 이라는 장점이 상당히 크게 느껴져 이직을 하려 치면 과연 이 회사를 떠나도 이런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질게 뻔 하므로 이 문제는 되도록 접어두려 한다.
회사에서 일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현 시점에 회사를 좋아할만한 이유를 만들어 제안해 봐야겠다. 작년에도 해 봤으나 워낙 작은 스타트업이라 복지에 할애할 돈도 여유도 없어서 수렴이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헤어지지 못하고 질질끄는 오랜 연인마냥 나는 아직 회사에 미련이 남아있으므로 적어도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후회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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