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건 각자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영국에 넘어오기 전 한국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벗어나고싶은 환경이었고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서양권 문화에서의 삶에대한 동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갈 뿐이었다. 막상 한국에서 나와 이곳에 몇년을 살아보니 살아내느라 미처 돌아볼 새가 없었던 해외생활의 힘든점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외국인친구들 좀 사겨보고 그 친구들과 자주 놀러 다녀서인지 나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한국패치가 되어있다는걸 망각했기도 하고 미디어를 통해 접한 서양문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덕에 외국에서는 눈마주치면 다 인사하고 친구되는줄 알았다. 막상 넘어와보니 나는 그냥 하고많은 이민자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내가 이곳에 살면서 써야하는 영어는 한국에서 하고싶을때만 말하던 영어가 아니라 숨쉬듯 해야하는 영어다. 책에선 배우지 못한 생활은어, 문화가 섞인 농담 등을 하루에 한 번 못알아드는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어쩌다 알아듣는게 일상 다반사였다. 내 나라에서 어릴때 부터 자연스럽게 익혀진 모국어를 쓸 때 마주할 일이 없었던 '어떤것에 무지한 상태의 나'를 이곳에서 밥먹듯 마주하게 된 것이다.
왜 외국에 살다보면 어느순간 귀가 트이고 언어가 알아서 늘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걸까? 내일당장 영어를 알아들어야 하는데 오늘 단어 몇 개 외운다고 티가 나기나 할까? 이런 잡스런 생각을 하면서 좌절감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알아듣는 척 하는 가면은 꾸준히 쓰고 밖으로 나갔다. 여행이나 어학연수로 영국에 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일당백을 해내야 하는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게 뽀록나서 짤릴까봐 대놓고 못알아들었다고 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말수가 줄어들고 할줄아는건 대답밖에 없어져 버렸다. 한국에서는 말도 많고 까불거리는 성격이었는데 난생 처음 접해보는 또다른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간혹 영국인 친구들이 '너 영어 잘해! 자신감을 가져!' 라는 똥같은 소리를 하는데 감정섞인 심한욕이 나올 것 같아 여기에 대답은 굳이 하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영국 살면서 가장 큰 수확이 뭐냐고 묻는다면 영어실력 향상, 문화생활 이런것 다 제치고 또다른 나와 마주하는 법, 혼자있는 법을 배운것 이라고 대답하겠다. 심심하면 근처에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던, 하고싶은 말을 못해서 바보가 되었던 경험이 없던 한국에서의 생활과 정 반대되는 외롭고 수줍은 나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따르는 삶을 살기 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싶은 이야기에 귀를 귀울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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