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 맵부심이 있는 한국인이었다. 어릴때에도 김치를 물에 씻어먹지 않았고 일곱살 때 짬뽕 한그릇을 혼자 해치울 정도로 매운음식에 대한 조기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자란 맵부심 충만한 한국인은 퇴근 후 조지는 틈새라면, 닭발, 엽떡 등등 매운음식들이 주는 아드레날린을 다음날 화장실에서 약간의 불편함과 맞바꿨다. 그런데, 이런내가 영국에 와서 맵찔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다. 엽떡으로 단련되어있던 나의 혀는 여기애들이 맵다고 난리치는 (커리나 칠리오일 혹은 주로 슬라이스 된 고추가 토핑으로 올라가있는) 음식들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맵찔이의 세계로 조금씩 스며들었던 걸까... 4년차 어느날 신라면을 먹었는데 입술이 너무 따가운 것이다. 한국에서 보내온 레트로트 안주 시리즈를 먹으면 다음날 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위까지 콕콕 쑤셔왔다. 아니 이걸 사람이 먹으라고 만들었단 말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영국에 살면서 한국음식을 꽤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4년이란 시간동안 안맵고 느끼한 음식에도 단련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식성이 바뀐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영국에서 외식을 할때면 느끼하고 양이 너무 많아서 절반씩 남기곤 했는데 요즘은 로스트 한 접시를 혼자 해치운다. 반대로 한국에 가서는 먹는족족 배탈이 난다. 시차적응 기간 동안에 한국시간에 맞춘 식사는 영국시간으로 꼭두새벽에 위에 음식을 밀어넣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꼭 먹고 말겠노라고 적어간 음식들은 다 매운음식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음식을 먹어도 매운맛이 기본으로 첨가되어있어 내 위는 양국의 시차와 음식에 적응하느라 곤욕이었을 것이다. 한국기준 맵찔이가 되었을 지언정 여기 사람들 보다는 매운음식을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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