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변하는 삶의 모습
영국에서의 다년간의 삶을 돌아보니, 현재에 삶의 모습에 이르기 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루하루가 무료하다 느껴질 때 이런 날들이 있기 전 내 삶이 어땠는지 한 번 씩 상기시키기 위해 여기 적어본다.
직장 / 지역 / 집 - 생활반경을 정하는 가장 큰 틀
직장 - 영국생활 초기에는 비자의 제약이 있을 때라 나를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기세였고 그래서 이것저것 재고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구직 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비자걱정에서 해방되고 나니 제약없이 회사를 고르게 되고 내 선호에 맞추어 어느정도 걸러내기가 가능해 졌다. 회사의 문화, 복지 그리고 팀 구조와 같은 것들을 중요시 보게되었다. 이건 사실 경험으로 알게된 것이라 초창기엔 비자 제약이 없었다 하더라도 회사보는 눈이 없어서 잘 모르고 아무데나 들어갔을 것 같긴 하다. 아무리 별로인 회사여도 한국에서 일하던 업무스타일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어서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고 다닌게 6개월 정도이고 그 이후에도 그만두기 전 까진 사실 크게 문제를 못느꼈었다. 내 의지로 한 이직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치다 보니 제대로 된 회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잡혔다. 덕분에 코가 높아져서 이직기간이 길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지역 -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굳이 그곳을 벗어나고싶단 생각은 없었다. 인프라가 런던에 몰렸기 때문에 런던에 사는게 당연하다 생각했었고 주변에서도 런던을 선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냥저냥 살아가다 장기 여행을 할 일이 생겼는데, 그 때 렌트비가 물처럼 새어나가는게 무의미 하다 느껴져 짐을 시댁에 맡기게 되고 그 길로 런던을 떠나게 됐다. 떠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는 도시를 안좋아 했었다. 내게는 도시가 주는 장점 보다는 하루에 수십번씩 귀가 터질 것 같은 소리를 울려대는 경찰차, 엠뷸런스와 복잡한 거리가 주는 위협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런던에 거주하고 있어서 종종 방문하는데 딱 이정도에 만족 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런던의 한 동네보다 조금 큰 느낌의 작은 타운인데 한국슈퍼 빼고 있을건 다 있다. 하지만 아시안 수퍼마켓이 두세개 정도 있어서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한식은 대체품을 거의 확보해 놔서 특정 메뉴만 포기하면 그럭저럭 먹고살만 하다.
집 - 워홀러 + 취업비자일 때 살던 집들은 허접하기 짝이없는 플랏들이었는데, 그 땐 영국집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을 때여서 내눈엔 다 빌라같았는데 지나고보니 거기서 어떻게 살았지 싶다. 싱글 + 이민자 신분으로 런던에 거주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들 집에 가 봐도 다 나랑 비슷비슷했기에 영국의 진짜 가정집을 볼 기회가 없었다. 남편을 만나면서 '하우스'라는 개념의 집들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는데 영국인들이라고 다 바람 숭숭 들어오는 추운 집에 사는게 아니고 너덜너덜한 주방에서 코팅이 다 벗겨진 팬에 요리해먹고 사는게 아니구나 하는걸 알게됐다. 그냥 내가 살던 집들이 그랬던거다. 천장이 높고 창문이 큰 Georgian 스타일의 집은 보기엔 멋지지만 막상 살아보면 여기가 밖인지 안인지 구분이 안가게 우풍이 심하게 들어오고 빌라같이 생긴 오래된 벽돌건물은 카운슬 플랏이란걸 이젠 안다. 최고의 집은 양옆에 붙어있는 건물 없이 홀로 서있는 detached house 이고 그래서 detached house는 다른 집들에 비해 비싸다. 하지만 하우스라고 모든게 완벽한것도 아닌게 영국엔 쥐가 많다. 내 집이 아무리 깨끗해도 살고있는 도로에 쥐가 살면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온다. 구멍이 많아서 잘 들어온단다. 나도 알고싶지 않았다.
휴식 / 취미 - 관심사의 변화
초기엔 어울려 노는 사람들이 대부분 싱글이어서, 그리고 런던에 정착'중'인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흔들리는 청춘 느낌의 여가를 주로 보냈다. 술이 빠지면 서운한 만남들이 기본값 이었으며 함께 뮤직 페스티벌에 간다던가 강변에서 패들보딩을 하는 등 지금의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액티비티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땐 소속감이 중요했기 때문에 내 선호도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휴식을 휴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엔 불안이 차올랐다. 그래서 그것들을 잊을 정신없는 활동들을 하면서 내가 이걸 좋아하나보다 하고 팔랑팔랑 돌아다녔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감을 찾고나니 관심사가 옮겨간다. 시끌벅적하게 노는 장소에 잘 안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옷도 헐렁하고 편한걸 골라입게 된다. 잘 먹고 잘 쉬는데 초점을 맞춘 여가를 선호하게 됐다. 이게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는데 적응하기 바빠 놓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아니면 흔들리는 청춘기를 지나온걸지도.
의/식/(술)주 - '나'를 위한 것들
의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몇 년은 몸에 붙는 옷을 주로 입고 다녔고, 얕지만 화장은 항상 하고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반질반질 해보이는 자기관리 잘 된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보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실 모양새를 하고 다닌다. 한국에 살 때에도 그다지 꾸미는 축에 속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그 때의 습관덕에 영국에서의 초반 몇 년은 부지런히 겉모습을 관리해왔다. 아마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헐렁한 옷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편안한 모습의 꾸밈이 눈에 들어와 요즘은 거의 자연인같이 하고다닌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더 거렁뱅이같이 하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여기선 내가 그다지 튀지 않는다. 이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모임에 나갈 때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곤란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날들을 위해 오래 입을만한 괜찮은 옷 몇 벌을 구비해 놔야지 싶다.
식 - 영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음식 선호도가 한식에서 양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신기한게도 한식을 더 꼬박 챙겨먹게 됐다. 내가 있는 지역은 런던보다도 한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년간의 노하우로 대체품을 찾게 되었고 또 오래 쟁여두고 먹을 수 있는 염장 혹은 건조 식재료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다. 입맛이 서양식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영국의 한식당이 현지화 되듯 내가 만든 한식들도 순해진다. 레시피에 매운 맛을 내는 재료를 정량으로 넣지 않게됐다. 고추장 두 스푼은 한 스푼이나 반 스푼으로 줄여서 넣어야 속이 편하다. 한국에서 맵부심 좀 부리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신라면도 꽤 맵다. 안먹다 보니 몸이 자극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반대로 양식을 먹는 수준도 조금 올라갔는데, 초기에 영국음식에 대한 악평 + 어디서 뭘 먹어야 할 지 모르는 외국인 신분으로 접했던 서양식들은 형편없던게 사실이다. 이것역시 다년간의 경험으로 맛있는 영국음식 혹은 서양식을 알게되었다. 이곳에도 마늘과 MSG가 적절히 들어가 한식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들이 꽤 있다. 주식은 한식을 먹지만 특별한 날 만족스럽게 먹을 서양식들도 함께 어우러져 식생활에 나름 만족한다.
주 - 집은 위에서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술 '주' 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 주 3회 정도 음주를 즐겼다. 한 번 마시면 소주 한두 병을 기본으로 마시고 다음날 정시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짓이었다. 술은 원래 그렇게 즐기는 건 줄 알고 영국에 넘어와서는 다른 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로 다섯 파인트 정도 마시면서 놀았다. 이 역시 코로나 동안 중단하게 되었는데 몇 달 뒤 맥주 한 잔에도 취하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소셜 드링커인 남편과 함께 살다보니 점점 술을 줄여가게 된다. 이젠 음주 빈도가 연 10회 정도 되는 것 같다. 마셔도 다음날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마시게 되었다. 이건 영국에서의 삶이 바꾼 습관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해독기능이 예전보다 떨어진 걸 알아차리고 몸을 사리게 된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엔 벗어나고 싶었던 것 들이 많아서 영국으로 넘어오려 고군분투 했고, 영국에 넘어와서는 이 곳에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꿈꾸던 워라벨을 맞추고 나니 여유시간이 꽤 생겨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처음엔 이 시간에 뭔가 해야할 것 같아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지만 회피했던 시간들은 다음날 다시 찾아왔서 언젠가는 마주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였다면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며 지워버렸을 이 낯선 감정을 이곳에서는 피해 도망칠 곳이 없고 또 내가 살아온 흔적이 없는 곳 이어서인지 내가 누구인지 더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지나보낸 시간과 함께 영국이라는 나라에 품고있던 신선함이 어느정도 사라지고 이곳에서의 삶이 내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성에 차게 영어를 구사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잘하려 노력하지도 않는 태도가 그동안 몸에 꽁꽁 품어뒀던 긴장이 풀렸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