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석사 2020 - 2021

[일상] 한국 다녀옴

Busybee_ldn 2021. 12. 8. 04:47

코로나가 터지고 계획했던 한국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2년 반 만에 한국에 가게 되었다. 해외입국자의 격리면제가 처음으로 시행되었을 즈음 논문이 통과되어 바로 티켓을 끊었다. 때를 잘 맞추어 출국 전 PCR 테스트를 받고 (이것도 한 70파운드 깨졌지만) 한국에서는 보건소에서 입국 첫날과 6일차에 한 번씩 총 두번의 검사를 받고 생활하다가 영국에 돌아와서 자가 테스트를 한 번 하면 되는 이전에 비하면 비교적 간편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단지 환승 비행기표를 끊은 경우, 경유국에 맞는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조금 헷갈렸다. 나는 뮌헨에서 경유했는데 관련서류를 출력하지 않고 휴대기기에 저장된 것을 보여준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아서 공항에서 골치썩는 분들을 몇 봤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독일식 일처리였다.

이래저래 복잡한 절차를 모두 거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했는데 역시나 눕코노미가 가능한 배치였다. 나도 누워갔지만 이코노미는 이코노미다. 어떻게 누워도 정수리에 팔걸이가 닿아 잠들 때 힘이 풀리면서 목이 꺾여버려서 잠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개같이 벌어서 비지니스 타리라 여기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지루했던 아홉시간 반 정도의 비행이 끝나고 도착하자마자 작성한 서류를 들고 후다닥 다리듯 걸어가는 빨리빨리의 민족들을 따라가니 몇 단계의 서류검사 데스크가 있었다. 줄도 길지 않고 무엇보다 일처리가 빨라서 시키는대로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모든 관문을 통과 해 내 캐리어에는 '해외입국자 이지만 자유' 라는 표식의 스티커가 하나 붙어있고 나는 입국장에 덩그러니 서있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갈아끼운 한국 유심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역 내 와이파이에 의존해 무사히 가족과 상봉할 수 있었다. 쉬우면 이상한 입국길이다.

규칙에 따라 바로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고 귀가 해 다음날 오전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격리에 들어갔다. 밥먹고 한잠 자고나니 격리해제 문자가 오고 오전 느즈막에 관할지역 공무원에게 확인전화가 왔다. 나가 놀아도 좋다는 확인을 받은 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보험공단에 가서 장기정지를 해지하고 이것저것 일을 보느라 돌아다녔는데 역시나 일처리 최고인 내나라. 경이로웠다. 솔선수범해서 출입기록을 남기고 실 내, 외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하는, 특히나 식당에서도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 국민성에 감동해 박수를 치고 싶었다. 완벽을 추구해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내 나라의 문화가 영국에서의 더딘 서비스에 쩌들대로 쩌들고 나니 신셰게로 보였다. 그래서 요즘, 영국에 정착하려던 생각이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몇몇 지인들이 날씨나 의료시스템에 질릴대로 질려 제 3국으로 떠나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보인다. 나는 아직 크게 데인적이 없어 못살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꼭 여기서 살겠어 라고 결정짓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한 달이 먹고싶은 것 다 먹고 만나고싶은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긴 기간이라 생각했지만 그 전 휴가에 비해 긴 기간이었을 뿐 한 달도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순회하고 주중엔 가족들과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나니 시차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던건지 떠나는 날 까지 푹 잘 수가 없었다. 동쪽으로 갈 수록 시차 맞추기가 어렵다는데 그래서인지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시차가 한번에 맞춰지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돌아올 때에도 역시 뮌헨에서 경유했는데 경유시간이 한 시간인 것을 출국 전 날 비행기표 확인하다 알아버렸다. 유랑에 한시간 경유가 가능한지 검색해보니 포기하란 댓글들이 있어서 작정하고 뛸 생각으로 비행기가 도착 하자마자 부지런히 내려서 겨터파크 폭팔하게 뛰었다. 천만 다행으로 코시국이어서 그런지 보안검색대 줄이 없어서 15분만에 예약한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다음부턴 경유행 비행기표 끊을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끊어야겠다.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이 하고싶은지 척척 알아차리는 고국의 사람들을 만나 내 나라 음식을 원없이 먹고 와서인지 영국을 떠날 때와는 다르게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많이 가라앉았다. 석달에 한 번 씩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