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ybee_ldn 2021. 2. 3. 20:23

나는 한식없이 못사는 그 중에서도 찐 아재입맛이다. 해외에서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기 시작했을 때에도 음식이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그만큼 음식은 내 삶의 낙이자 원동력이다. 결국 영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챙겨가고 최대한 요리해서 먹자고 생각했다. 막상 살아보니 런던이어서 그런지 집 앞 까지는 아니지만 동네마다 중국슈퍼들이 있고 한인타운과 한국 슈퍼들도 띄엄띄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시안 슈퍼마켓이나 한국 슈퍼마켓에 가면 브랜드는 생소하지만 낯익은 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 금액은 한국의 물가 보다는 조금 높고 영국에서 식재료를 살 때 지불하는 금액보다도 비싸다. 동네 슈퍼에 치이던 깻잎과 팽이버섯이 여기서는 특별한 날에 큰 맘 먹고 사는 식재료가 되어버렸다. 양배추나 애호박 등은 영국의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맛과 질감이 조금씩 달라서 초반에 당혹스러웠다. 양배추는 질기고 오이는 달며 애호박은 쓰다. 이런탓에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마트에 가서 큰맘먹고 구해온 한식 재료들로 요리를 했을 때 애매하게 맛이 다른걸 느낄 수 있다.

 

애매하게 다른 맛과 열심히 만든 음식을 혼자 먹는것에 질려 한국음식 요리하기를 당분간 쉬었다가 니맛도 내맛도 아닌 영국음식에 치를떨며 다시 한식을 만들어 내가만든 음식지옥에 갇히기를 반복한다. 함께 식사할 현지 친구들이 없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가장 안전해보이고 재료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음식들을 주로 사먹었는데 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익히기만 한 채소, 쌀, 고기를 먹는 느낌이었다. 후에 사귀게 된 현지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영국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에는 영국음식 이외에도 전세계의 맛있는 음식들이 다 모여있다. 이 음식들은 한식못지않게 감칠맛이 나기도 하고 니맛도 내맛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현지 가정식은 실제로 간이 아주 쎄다. 이전에 사먹었던 음식들도 추가로 소금을 팍팍 쳤어야 했나보다.

 

초반에는 음식이 맛없어서 먹어도 살이 빠졌는데 맛있는 음식을 찾고나서는 살도 붙고 먹는 양도 많아졌다. 영국에서의 1인분은 도무지 한번에 끝낼 수가 없는 양이다. 야심차게 달려들어도 1/3 이상 먹고나면 더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양이 적어서가 아니다. 김치 아니 심지어 피클도 없이 먹어야 하는 느끼한 음식 한 접시는 나에게 곤욕이었다. 맛있지만 느끼한 현지음식과 안느끼하지만 애매하게 맛이다르고 한 번 만들면 몇 끼니 연속으로 먹어야하는 한식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점점 현시음식이 입에 맞아가고 있는게 느껴진다. 어느날은 코코넛이 들어간 난에 커리를 찍어 먹고싶기도 하고 또 어떤날은 얇게 썬 살라미와 로켓이 흩뿌려진 피자가 당기기도 한다. 내돈내고 피자를 시켜먹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요즘은 영국 이민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한국음식들이 적잖이 나를 유혹한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대체품들이 소개될 때에는 바로 동네 마트로 달려가 재료를 사와서 만들어본다. 그렇게 해서 작년 한 해 꽤 많은 레시피들을 시도해 봤다. 영양찰떡, 김치, 단무지, 피클, 고구마, 생선찜 등등. 중국슈퍼에 가면 Mooli 라는 이름의 길쭉한 단무지용 무를 판다. 무는 얘로 대체하고 아구찜 처돌이는 아쉬운대로 생선과 숙주를 구해와 생선찜을 만들어 먹는다. 이젠 머릿속에 얼추 어떤 마트에 가면 무슨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지도가 그려진다. 산책을 하다가 중국슈퍼가 보이면 꼭 들러서 재료를 구경한다. 중국마트에는 의외로 한국식재료가 많다. 한국 음식인줄 알았던 것들도 중국어로 쓰여진 포장지에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쌀과자와 호빵이 그것들 중 하나이다. 

 

그동안 쌓은 데이터로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구하지 못하는 재료들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아있다. 작년에 한국으로 휴가가서 먹으려고 작정했던 음식들을 올해는 꼭 뿌시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