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영어공부
영국에 넘어온 이후 영어는 살면서 자연스레 익혀지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회사생활을 해보니 책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표현과 억양들을 살면서 익혀가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자라왔기에 모르는게 당연하지만 그 때는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여간 괴로운게 아니었다. 생활에서 습득한 영어 역시 그 뒤에 복습이 없다면 내 머리에 고스란히 익혀지기까지 10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익혀진 영어는 한번에 외워지는 장점이 있지만 정신적 손상이 크다는 단점을 동반한다.) 누구와 어울리느냐도 내 영어 스타일에 영향력을 미친다. 박학다식한 사람들과 어울릴 때 사용하는 언어의 질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이 그룹에 익숙해지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 더이상 올바른 영어를 쓰기위한 긴장감을 갖지않게 된다.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책하는 스타일이어서 모국어인 영어로 신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앞에서 위축이 되었고 여기에 완벽주의 성향이 더해져 한도끝도 없이 높은 내 기준에 맞추기 위한 영어공부를 시작조차 하기 두려워 외면하곤 했다. 그렇게 조바심과 외면을 거듭하다 보니 3년이 흘렀고 그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내 영어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조금씩 트이고 있었다.
요즘 내 영어는 살기위한 영어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한 영어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단어를 이해하지만 올바른 발음과 표현법을 사용해 듣기좋은 영어로 바꾸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젓는다는 마음으로 작년에 사 두고 방치한 원서를 아침에 30분씩 읽기로 했다. 첫장부터 과학용어가 난무하는 Sapiens 라는 두껍고 원서냄새 풀풀나는 책을 작년에 사두고 방치했었는데 다시 천천히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하루에 30분씩 모르는 단어를 찾고 읽는 중이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 장에서 두 장이 전부이고 한페이지 당 모르는 단어가 15개씩 나오지만 그동안 눈과 입이 트였다고 매끄럽게 그 한장을 읽어가는 내 목소리가 흥미롭게 들렸다. 원서에 흥미를 붙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읽기가 오늘로 2주차에 접어들었고 놀랍게도 아침에 일어나면 하기싫은 일 목록에 원서읽기는 떠오르지 않는다.
논문을 위해 쓰기도 손을 봐야 하지만 일단 읽기실력만 올려놓아도 생활이 훨씬 수월해지는게 체감이 된다. 읽기를 회피하지 않으면 머리에 들어오는 지식의 양이 현저히 늘어나는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 재미를 깨달은 지금은 모르는 단어가 나타나도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그 단어를 습득함과 동시에 한단계 성장한 나를 그리며 기꺼이 검색하고 읽어보게 된다. 그렇다고 항상 단어를 쓰고 외우는건 아니다.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 식의 단계를 벗어난 정도이다. 이렇게 하루 한 장 씩 읽다보면 언젠가는 이 두꺼운 사피엔스를 완독하게 될 것이고 그 안에 단어들은 내것이 되겠지. 올 한 해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내 영어를 키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