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워킹홀리데이 2017 - 2018

[워킹홀리데이] 워털루 집 2 - 일상

Busybee_ldn 2020. 9. 25. 00:48

 

 이사 하고 몇 주 정도가 지나니 워털루 집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플랏메이트들도 조금씩 눈에 익기 시작했다. 세 명의 플랏메이트들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 보자면 첫번째로 내 방을 인터넷에 올렸던 S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런던으로 온 지 9년차 라던 S는 이 플랏에 산지 6년째라고 한다.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산 1세대 플랏메이트인 샘이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애가 N인데 얘는 아프리카계 영국인이었다. 이사 전 최종적으로 플랏메이트들을 만나는 날 얘를 처음 봤는데 그 날은 살갑게 맞아주더니 그 다음부터는 마주칠 때 마다 웅얼웅얼 인사하고 사라져서 좀 의아했는다. 나중에 S와 대화하다 알게되었는데 N은 술마시거나 주말이 아니면 그러니까 평일에 맨정신일 때에는 항상 영혼이 빠져나간 것 처럼 보인뎄다. 마지막으로 스웨덴에서 온 R이 있다. S가 추측하건데 얘는 남자친구집에 주로 상주해서 집에 잘 안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사하고 한달 만에 R을 처음 만났다. 그 때도 부엌에서 뚝딱거리며 케잌을 만들더니 케잌이 완성되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S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여자애들은 마주쳐도 안녕 하고 자기 방으로 숨어버려서 한참동안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이제 회사랑 집도 가까워지고 야근도 안하겠다 남아도는게 시간인데 정작 나는 친구도 없고 한국에서 일할 때에는 이렇게 긴 여가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어교환 밋업에 나가고 미술학원도 다녀보고 그렇게 여가시간을 쓰는 법을 배워가던 초기의 어느 주말 S와 부엌에서 마주쳤다. 새침떼기같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S는 수다쟁이었다. 그러다 한 번 씩 이모처럼 깔깔깔 웃기도 했다. S가 자기 꽃시장에 갈건데 함께 갈테냐고 물어봐서 친목에 목말랐던 나는 그길로 S를 따라 나섰다. 한시간 반 정도 수다를 떨면서 꽃시장에 도착했다. S가 사려는 씨앗을 사고나서 길에서 파는 오징어 튀김을 나눠먹고는 펍에서 맥주 한 잔을 했다. 그러고 또 한시간 반을 수다떨면서 집으로 걸어왔다. S는 음식에 아시아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자기가 피자를 만들어줄테니 나보고 만두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세시간을 내리 걷고 지칠대로 지쳐버린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꽃시장을 계기로 S와 조금 가까워져 워털루 집이 더 편안해 졌다. N을 마주칠 때에는 여전히 어색했지만ㅋㅋㅋ. S는 이탈리아 남자답게 피자를 끝내주게 만들었다. S의 피자는 그동안 먹어봤던 피자들과는 전혀 다른 피자였다. 도우가 아주 얇은데 그 위에 토마토베이스 없이 방울토마토 조각과 치즈를 뚝 뚝 간격을 두고 놓은 다음 로즈마리 잎을 올려서 그대로 구우면 이게 피자인가 비스켓인가 싶을만큼 바삭바삭한 피자가 만들어진다. 그 위에 저래도 될까 싶을 때 까지 소금을 팍파파파팍 치는데 이게 의외로 맛있다. S는 항상 피자를 구울 때 다 탔다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하나도 안타고 맛있기만 했다. 얘가 가져오는 재료가 다 이탈리아 집에서 공수해 오는 토마토, 치즈, 고추 들이라서 그런지 그냥 다 맛있다. 그 이후로 어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피자를 사먹어도 S가 만들어주는 것 만 못하다. S는 피자를 정말 자주 만들어 줬는데 본인피셜로 피자는 아침에 먹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아침에 피자를 구워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한 조각 먹이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점심으로 먹으라면서 다 가져가란다. 고맙고 맛있어서 열심히 먹으면 그런 나를 재밌다며 S는 사진을 찍어댔다.

 

 

 워털루 집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졌을 때 즈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걸어서 회사에 갔다. 퇴근하고 집에오면 뭔지모를 허함에 음식을 엄청나게 만들어서 먹고(향수병이 왔던던 것 같다) 남아도는 저녁시간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시간을 떼우다 잠들었다. 영국에 오랜친구들이 있었거나 어릴적 부터 살아오던 동네였다면 저녁에 주어지는 여가시간을 나름대로 잘 활용했겠지만 갑작스럽게 주어진 규칙적인 여가시간에 뭘 해야할지 몰라 꽤나 어색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친구가 아예 없던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속에 있는걸 다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들도 아니었어서 더 외로웠던 것 같다. 자유가 고파서 떠나온 한국인데 막상 눈앞에 주어진 자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워털루 집에서의 일상은 평화로우면서도 어색하고 또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